번호 : 62
글쓴날 : 2003-01-21 21:41:00
글쓴이 : 펌(대책위) 조회 : 5303
링크 : http://antidoosan.or.kr/
제목: 펌) 1-22배달호분신대책위 일정, 자료

15-21일 보도자료(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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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재벌 노조탄압 규탄
노동열사 고 배달호동지 분신사망 대책위원회

제목: "살인재벌 두산의 노조탄압 사례 몇가지" "1/22(수) 일정공지"
     【謹 弔】

 


[살인재벌 두산의 노조탄압 사례 몇가지] 


살인재벌 두산의 노조탄압 사례 

배달호 열사가 유서에서 절규했듯이 두산의 노조탄압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함 그 자체이다. 
두산중공업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민주노조에 대해서는 살인도
서슴지않는 탄압으로 노조를 파괴·와해하거나 무력화시켰고, 민주노조의
싹이 보이면 사정없이 잘랐다. 그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
                
○ 두산전자- 노조 불인정 …'손배·가압류'로 복직포기 강요 
금속노조 구미지부 두산전자 김천공장지회가 설립된 것은 지난 해
3월24일. 두산전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한 달에
이틀밖에 못 쉬는 맞교대 근무인데도 회사는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휴가조차 제대로 내주지 않았다. 밥 한 끼를 주고 야근을 시키면서도 식사
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산재 사고가 일어나면 이를
은폐하기 위해 공상처리하였다.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 두산전자 노동자들은 두산전자에 이미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노동조합이 있는 줄 알면서도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으로 금속노조 산하 지회를 결성했다. 

회사는 현장에서 노조 결성 움직임이 있자 재빨리 주임과 반장 등 4명을
노조에 가입시켰다. 지회 결성 당시 조합원이 78명이었으나 곧바로 조,
반장을 제외한 생산직 노동자 전원인 98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회사는
복수노조 금지 조항에 저촉되는 불법노조라며 교섭을 거부했고,
조합원들에 대한 노조탈퇴 공작을 폈고 물량 반출을 기도하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여기에 굴하지 않고 공장 안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여나가자
회사는 폭력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일당 7∼10만원을 주고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정문 출입을 통제하고,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회 간부들에 대한 대량징계와 고소고발, 손해배상·가압류
등 갖은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검경찰과 법원도 두산 재벌의 편이었다. 노조에서 제출한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고, 대신 회사의 가처분 신청과 손해·가압류,
고소고발은 줄줄이 받아들여졌다. 김정배 지회장을 비롯한 지회 간부
5명이 구속되고, 9명이 해고되었으며, 15명이 정직과 감봉 조치를 받았다.

40명에 대해 5억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되었으며, 36명에게 부동산과 임금,
퇴직금 가압류가 떨어졌다. 가압류에는 이선배 지부장을 비롯한 지역 간부
4명이 포함되었으며, 36명 전원에게 통장 가압류가 떨어져 임금의 50%마저
찾을 수 없도록 했다.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받지 못해 파업을 하기 힘든 조건에서 전 조합원
천막농성을 중심으로 집회, 선전전 등 끈질긴 투쟁을 벌여왔던
조합원들은, 결국 7월 중순 휴·폐업하겠다는 회사의 협박에 이기지
못하고 사내 농성을 해산했으며, 이후 투쟁은 회사 밖에 천막을 친
해고자와 정직자들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난 1월초 그동안
투쟁을 이어왔던 해고자들마저 복직을 포기하는 대신 손배·가압류 취하,
3개월 임금 지급 등에 개별적으로 합의함으로써 김천지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두산전자 투쟁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두산은 나머지 간부, 조합원들에 대한 손배, 가압류를 아직 풀지 않고
있다. 개개인을 상대로 손배, 가압류 해제를 미끼로 '길들이기'에 들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고소고발되어 2-3백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조합원들이 "정식재판 청구하면 해고된다"며 집단적 대응을 포기하고
개개인이 벌금을 감수한 것만 보아도 두산의 악랄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 두산기계- 소사장·다물교육으로 노조 무력화 
두산기계는 1996년에만 해도 병점과 창원에 공장이 있었으며, 노조
조합원이 67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회사측은 노조를 깨기 위해
95년부터 소사장제를 도입하고 다물 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그리고
이에 맞서던 노조 지도부 4명을 96년에 해고시켰다. 회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다물단 교육을 마친 조합원들을 노조에서 탈퇴시켜 다물단을 꾸리고
노조 탄압의 첨병으로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97년 10월 병점 공장의 다물단 간부들은 병점 공장에 출장 간
창원지부 박덕기 전 사무장을 만나 창원공장에도 다물단을 꾸릴 것을
회유하다가 박덕기 조합원이 이를 거부하자 폭력을 휘둘러 숨지게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후 두산기계는 98년 병점공장을 매각했으며,
이 과정에서 6백여명의 노동자들을 통상임금 3개월치의 위로금을 주고
잘라냈다. 

2000년 창원공장에도 희망퇴직과 소사장제 바람이 불었다. 그 결과
두산기계 조합원은 24명으로 줄어 든 대신 비정규직은 눈덩이처럼 늘어
500여명에 이른다. 두산기계는 2001년 11월 한중의 자회사였던
한중DCM으로 넘어갔고, 회사 이름도 두산매카텍으로 바뀌었으며, 금속노조
소속이었던 두산기계지회도 두산매카텍노조로 흡수되었다.
두산매카텍노조는 어느 상급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 두산유리, 두산버거킹 
두산재벌은 98년 두산유리(현 (주)두산 테크팩BG)에서 노조의 투쟁력이
가장 강했던 마산지부를 와해하기 위해 장기휴업으로 조합원 120여 명의
퇴사를 유도하고 끝내는 마산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시설 노후화로 휴업
중이던 군산공장을 재가동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해에는 (주)두산 산하 외식체인점인 버그킹 BU(Business
Unit)에서 270여명으로 구성된 (주)두산 버거킹 노조가 생기자 사료공장
노동자들로 구성된 (주)두산식품노동조합의 조합원 중 버거킹BU 소속
노동자가 있다(회사측이 두산식품노조 외의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2000년
1월에 각 BU별로 한 두명씩 가입시켜 둠)는 구실로 버거킹노조 관할
행정관청인 서울 강남구청에 이의신청을 제기하여 노조 설립을 끝내
무산시킨 바 있다."끝"





 ○ 지회: 
    - '추모 촛불시위'(18시-19시)
    - '공장별 순환 1시간 조문투쟁' 순환파업
    - 공장별(지구대별) 주검사수 순환 추모파업
    
 ○ 지역:
    - 06:30-07:30분: 봉암다리 입구 선전전(불매운동 포함)
    - 07시-08:20분: 수출후문, 위아·창원병원·명곡·팔용동 사거리
피켓선전전:(불매운동)      - 19시-20:20분: 두산사원아파트(6개지역),
정우상가, 창동 선전 및 서명운동(불매운동)
    - 야간집회(분향소, 19시)

 ○ 중앙: 
    - 금속연맹 서울, 인천, 충청지역 조합원 '합동 조문단' 방문(두산중,
17시)
    - 금속노조 중앙위원회(두산중, 14시)
    - 손배, 가압류 사업장 1인시위('대통령직 인수위'앞, 매일)
    - 두산타워(그룹본사), '대한상의'  두산중공업 해고자
'상복1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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