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의의
홍성태 (지적재산권 연구회, 사회학자)
1. 정보사회와 현실 정보사회
'새 즈믄해'를 앞두고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다가올 날들을 짐작하는 움직임들로 세상이 몹시 부산스럽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0년 전체가 요란스런 사건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이 100년을 흔히 '과학기술의 세기'라고도 부르거니와 현대의 과학기술이 사회변화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지난 10년은 '정보기술의 10년'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기술의 영향력이 크게 두드러졌다.
'정보사회'라는 용어는 이러한 정보기술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포착된 사회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용어 자체는 이미 1960년대에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정보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은 이미 1960년대부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용어는 역시 1960년대에 태동된 '탈산업사회'론과 어울리면서 산업사회 이후에 찾아올 새로운 사회, 즉 탈산업과 탈자본의 사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크게 세가지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 첫째, 이 용어가 기술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기술결정론'의 문제이다. 둘째, 정보사회는 '탈'산업사회일 수 없다. 공업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는 본질적으로 같다. 세째, 정보사회는 '탈'자본주의일 수 없다. 정보화는 자본-임노동관계를 없애지 않는다.
벨, 드러커, 토플러, 길더 등의 주류 정보사회론자들은 정보사회를 문명론적으로 다루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접근법이 대중화되면서 정보사회라는 용어는 사실상 '기술결정론'적으로 심하게 오염되었다. 그것은 기술의 개발과 이용방식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필자는 '현실 정보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이 용어는 정보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을 인정하는 한편, 그것이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고안되었다.
2. 현실 정보사회와 그누/리눅스
정보사회란 쉽게 말해 컴퓨터의 사용이 보편화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정보사회를 문명론적으로 다루는 주류 정보사회론자 혹은 정보주의자들은 무엇보다 컴퓨터의 기술적 특성과 장점을 강조한다. 정보주의자들의 논의 속에서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 혁신의 수준을 넘어서서 문명사적 전환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의는 자본주의적 기술 개발 및 이용방식을 사실상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지배이데올로기로 구실하게 된다.
현실 정보사회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정보화는 크게 두가지 대립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첫째, 자본주의적 사유화 경로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정보기술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돈 되는' 기술이 좋은 기술보다 우위를 차지하며, 수익성의 요구가 공공성의 요구를 제압하게 된다. 나아가 이것은 본래 공공재인 정보를 사유화하려는 움직임을 유례없이 강화한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시작된 세계지적재산권체제의 변화가 그 좋은 예이다. 이 경로를 대표하는 것은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이다. 둘째, 탈자본주의적 공유화 경로이다. 여기서 우선 주의할 점은 이것이 반자본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비자본주의조차도 명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보가 본래 공공재라는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이 경로는 탈자본주의의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점에서 자본가들로부터는 반자본주의 혹은 비자본주의의 '혐의'를 받기도 한다. 이 경로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그누/리눅스'이다.
정보사회는 컴퓨터의 사용이 보편화되는 사회라고 했지만, 그것은 기술의 개발 및 이용방식과 관련된 치열한 사회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두 경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컴퓨터의 사용'이란 기술적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사용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다시 운영체계와 응용프로그램으로 크게 구분된다. 지난 20년간 이 분야에서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전도현상이다. 초기에 사람들은 하드웨어를 사용하기 위해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 하드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보산업 전체를 소프트웨어분야가 주도하게 된 것이다. 둘째, 전체 소프트웨어분야에서 운영체계의 지배력 강화현상이다. 운영체계의 기술적 특성은 무엇보다도 그 '사회성'에서 찾을 수 있다. 운영체계는 다른 응용프로그램들이 작동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영체계의 구성요소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컴퓨터의 사용'이 확대되면 될수록 어떤 운영체계가 시장을 독점하게 될 가능성은 커진다. 이것은 IBM 호환형 개인용 컴퓨터, 즉 PC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구축한 놀라운 독점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운영체계의 독점이 중대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까닭은 그것이 결국 정보사회의 본질적인 기술환경 자체를 한 기업에게 다 맡겨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사용'을 주도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이고, 다시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운영체계이다. 그러므로 운영체계의 사적 소유를 그대로 인정하는 한, 정보사회의 기술환경을 한 기업이 좌우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대응은 현재 크게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미국 재무부 반독점국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반독점 소송'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를 전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부당한 독점력 행사'를 저지하고 경쟁적 시장을 복구하려는 조치이다. 즉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대응이다. 둘째, 리차드 스톨만이 1984년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세계적인 정보공유운동으로 성장한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운영체계(그누)의 개발을 목표로 시작된 이 운동은 1991년에 리눅스가 개발됨으로써 기술적으로는 '그누/리눅스체계'의 형태로 일단락되었다. 이 운동은 자본주의나 시장경제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선물경제'를 추구함으로써 사실상 '탈자본주의'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탈자본주의란 '비자본주의'이자 '비사회주의'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먼저 비자본주의라는 것은 이 운동이 정보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스톨만이 고안한 것이 바로 '카피 레프트', 즉 '공유 저작권'이다. 물론 여기서 정보란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기술정보이지만, '카피 레프트'의 발상은 다른 일반 저작물 분야로도 확대되고 있다. 다음에 비사회주의라는 것은 생산수단의 공유와 계획경제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식의 획일적 사고는 정보기술의 '발산적 발달형태'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보기술은 다양한 요소들 간의 복합적이고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변한다. 자본주의가 '돈의 지배'를 통해 기술의 발달과 이용을 제약한다면, 사회주의는 '획일성의 지배'를 통해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은 이러한 제약에서 벗어난 정보사회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 결과 현실 정보사회는 양 경로간의 대립 속에서 동요하게 된다.
3. 정보공유운동의 유형
정보사회의 지배적인 모델이 결국 '자본주의 정보사회'라면, 그 대항적인 모델은 '탈자본주의 정보사회'이다. 여기서 관건은 탈자본주의의 전망이 과연 어떤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리차드 스톨만이 주도한 '자유소프트웨어운동'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방식으로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 이 운동이 더욱 발전한다면, 확실히 지금의 정보산업 자체가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전개되어 가면서 '탈자본주의 정보사회'가 차츰 구체화되어 갈 것이다. 이런 전망 하에 소프트웨어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회운동을 '정보공유운동'으로 부르고자 한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이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운동'과 사실상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열린소스운동'이 새롭게 전개되면서 현재 이 운동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있는 상태이다. 물론 여기에 전통적인 해커운동을 덧붙인다면 정보공유운동은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의 이념적 핵심은 바로 '자유'이다. 이것은 누구나 어떤 제약도 없이 정보를 마음대로 이용하고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원칙이 전제되어 있다. 첫째, 공유의 원칙이다. 이것은 정보의 자본주의적 사유화에 반대하는 것이면서 생산수단의 사회주의적 공유화와도 크게 다른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정보 자체이다. 이 원칙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카피 레프트'가 고안되었지만, 이것 외에도 '정보접근권'의 확대가 반드시 요구된다. 둘째, 참여의 원칙이다. 이것은 개발자와 이용자의 거리를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쉽게 일체화될 수 있다. 정보의 소비과정은 또 다른 정보의 생산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의 생성과 기술적 구현은 다른 문제이다. 그러므로 참여가 원칙으로서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참여 위에서만 공유는 비로소 선물경제를 실현하게 된다.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공유는 필연적으로 '무임승차자'의 문제를 낳게 된다. 반대로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참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크게 제약받게 된다.
'열린소스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운동에서 파생된 운동이다. 기존의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을 '원칙주의'로 비판하며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이 운동은 에릭 레이몬드의 '성당과 시장'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소프트웨어의 개발방식과 관련된 것이다. '성당과 장터'란 소프트웨어 개발의 두가지 방식을 상징한다. 성당은 소수의 천재 혹은 기업에 의해 폐쇄적으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 방식을 뜻한다. 마치 중세의 성당이 한 사람의 위대한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던 것처럼. 이에 비해 장터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서 개방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식을 뜻한다. 마치 장터에서 사람들이 어지럽게 오고가며 질서를 형성하는 것처럼. 에릭 레이몬드는 자유소프트웨어와 사유소프트웨어를 막론하고 소프트웨어의 개발에서 장터의 방식이 훨씬 더 우월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카피 레프트'로 상징되는 공유의 원칙에 대한 비판이다. 에릭 레이몬드가 보기에 자유소프트웨어는 기술적으로 사유소프트웨어보다 훨씬 우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널리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업계에서 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 이유는 '카피 레프트'가 사적 소유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열린소스운동 측에서는 이 제약을 없애고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선에서 업계와 타협한다면, 자유소프트웨어가 확실히 소프트웨어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 경우의 자유소프트웨어는 스톨만의 그것과 구분하여 '열린소프트웨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해커운동은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이용에서 어떤 제약도 거부한다. 그것은 '정보는 공공재'라는 인식에 가장 철저하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정보를 사유화하는 데 대해 무력하다. 아니 그것에 대해 애초부터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행위 자체에만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거꾸로 이 운동은 정보의 사유화를 본래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해커운동은 자본주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파괴자'들의 범죄행위로 취급받기도 한다.
4. 정보공유운동의 전망
정보공유운동은 기술적 대안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개발과 이용방식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것은 사회적 대안을 추구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것은 돈이 아닌 다른 가치들을 추구하며, 이 가치들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그누/리눅스'는 단지 값싸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체계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보사회를 탈자본주의 정보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한 기술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것이 더욱 널리 확대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개인 사용자들이 사용하기에는 아직도 불편하고 응용프로그램들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체계와 비교한 평가이다. 윈도즈는 그에 기반을 두고 개발된 수많은 응용프로그램들과 하나의 거대한 기술체계를 이룬다. 그리고 이것은 기술의 개발과 이용에서 특정한 사회적 방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기술체계를 이룬다. 그누/리눅스는 바로 이 거대한 지배체계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체의 기술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응용프로그램들의 개발을 촉진하여 거대한 대안의 기술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동시에 기술의 개발과 이용에서 새로운 방식을 확산시켜 대안의 사회-기술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 과제는 분명히 달성될 것이다.
이 운동이 지금보다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사항에 대해 깊이있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개발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 문제는 결국 그누/리눅스를 더욱 널리 사용하도록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 경우의 경제적 보상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정보의 독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련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따라서 그누/리눅스의 사회적 의의를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야 한다. 이것은 윈도즈와 달리 단순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보공유운동과 정보사회운동의 긴밀한 연대는 이와 관련하여 특히 중요하다. 양자의 연대는 그누/리눅스의 사회적 의의를 다른 일반 사회운동으로, 그리고 나아가 일반 이용자들에게로 전파시키는 데서 핵심적인 구실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