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대 (the Digital age)의 독립미디어
-- 위성방송(Direct Broadcast Satellite, DBS)를 중심으로 Brian Drolet an Eric Galatas (Free speech TV)
이론상 공중파 방송은 대중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익을 제공해 주는 몇몇 소수의 개인에게 그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아담스미스가 말한 이 행복한 유토피아 세상에서 기업자본은 사회 전체를 위해 가능한 큰 만족을 창조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방송을 관리하고 방송 기술적 하부구조 정착을 위해서 기업이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국민을 위한 이익의 영원한 수호자인 정부는 기업이 투자에 대한 대가는 챙기되 방송을 기업의 사적 목표를 위해 남용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또한 국민에게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따라서 미국의 TV방송계를 보면 전국적 프로그램 작성과 지역 공공 방송의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Corporation for Public Broadcasting, Public Broadcasting System(PBS)가 있으며 그 밖에도 공공방송사의 지원을 받는 청취자에 기반한 라디오 방송 협회등 다양한 단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케이블 TV의 경우에도 정부는 프로그램 조정자 및 제공자들에 대해 Public Access(시청자가 제작한 프로가 방송될 수 있도록 방송 기관이 개인에게 시간대는 제공하는 것)를 규정으로 하여 시행시키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공공 방송과 Public Access 케이블 방송들은 불가피하게 상업화되거나 뒤쳐져 버리고 마는 결과를 보여왔다. 다시 말해 스폰서쉽의 미명하에 기업에 굴복하거나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도태되었다.
하지만 디지탈화 된다면 상황은 어떻게 될까?
디지탈 혁명이 많은 독립 매체 활동가들과 지지자들의 꿈을 실현시켜 줄까?
500채널의 디지털 시대에 무엇이 변하고 또 무엇이 그대로 존속될지는 훨씬 더 깊게 심사숙고 해 보아야 할 문제인 듯 싶다.
과거 케이블 TV, 라디오의 출현, 초기 식민 방송들이 우리에게 약속했던 내용들을 돌아볼 때 과연 디지털로의 변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게 될까 하는 부분에 대해 우리는 긍정적일 수 만은 없게 된다.
자유언론이 자유사회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논쟁은 독점 자본주의 전 단계의 에너지가 넘쳤던 시대에 구성되었다. 토마스 제퍼슨의 말을 빌자면 정보는 민주주의의 화폐이며 오직 강하고 독립적인 매체 기구만이 힘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그 언론을 이용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그 상황들을 알 때만이 우리는 스스로를 언론에 대한 그러한 힘의 남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매체가-실제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하듯이-바로 그 힘을 가진자들의 소유라면 어떻게 되는가?
워터게이트 사건 시절 워싱턴 포스트지의 편집장이었던 벤 바그디키안은 50개의 초국적 매체 기업들이 전세계의 출판물, 방송, 연예미디어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The Media Monopoly'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대략 1년쯤 전에 재발행 되었는데 이제 그 초국적 매체 기업들의 수는 아홉에 불과하며 따라서 독점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과 민주주의의 옹호자들은 기술의 진보와 대중이익의 수호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에 희망을 건다.
1992년 미국의회는 주 케이블TV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Direct Broadcast Satellite(DBS)의 운영자가 공중파를 쓰기 때문에, 돈을 버는 일 이외에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의회는 DBS 운영자들에게 공익충족의 의무를 말하며 독립적이고 사회의식적이며 문화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시청자들의 참여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표명했고 이후 이러한 사안들이 어떻게 실천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에 일임했다.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TV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6년 후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FCC는 결론을 도출해 내게되었다.
1988년 11월에 제정된 새 FCC 규칙에 의하면 DBS 운영자들은 전체 채널의 4%에 해당하는 부분을 따로 떼어 비상업적 교육이나 정보 프로그램에 할애해야 하며 1999년 12월까지는 이들 새 채널을 방송해야 한다.
DBS채널은 작은 피자크기의 접시안테나를 통해 받을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접시안테나를 가지고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구입하고 있다. 어떤 DBS 서비스회사는 300여개의 채널을 자랑하고 있으며 따라서 4%라는 수치는 공익옹호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낮은 것은 아니다. 예컨데 EchoStar의 접시안테나 네크워크의 경우는 12개 채널을 비상업적 부문에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6백만 가구를 기반으로 하는 Direct TV의 경우는 210여개의 채널을 갖고 있으며 9개 채널을 따로 떼어 두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영화와 비디오등 매체에 있어 대중이 마침내 진정으로 독립적인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FCC의 통제에 대한 뜨거운 논쟁은 DBS 운영자들이 누가 채널을 얻고 누가 얻지 못하는지에 대해 자체적인 최종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게 하였다.
90년대 실험적 영화제작과 기업범죄, 환경, 게이와 레즈비언, 인권등 다루기 힘든 주제들에 대한 독립적 업적들로 간간이 상을 받았던 Free Speech TV같은 경우에도 Direct TV Satellite 채널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보수프로그램 혹은 종교프로그램에 밀려 탈락되고 말았다.
선택된 9채널 확보자들중 셋은 기존의 광대한 방송망을 가진 그룹에 편입이 되었고 또 셋은 종교단체였다.
새 DBS 채널 확보를 위한 경쟁자들은 디지털 TV에 대해서는 풋내기인 경우가 많으며 또한 적정자 선발을 위한 기준도 너무 광범위하다.
'교육목적을 가진 비영리조직'.
심지어 대학처럼 영리조직이면서 고급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곳도 채널을 따기 위해 도전할 수 있다.
FCC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정하거나 조정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프로그래머들의 제작비용을 낮추기 위해 재정에 대한 원칙을 정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비용은 DBS에 접근해 가는데에 있어 중요한 장벽으로 작용한다. 무엇이 고가격이고 무엇이 저가격인지하는 사실은 이것을 자신의 채널에 직접 적용시키는 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놀래킬지도 모른다. Free Speech TV는 예상하기를 단순히 이들의 프로그램을 DBS 운영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초기 비용이 최소한 180,000 달러는 되리라 예측했다.
이러한 모든 도전에도 불구하고 Free Speech TV와 같은 독립 매체 기구들은 상업네트워크로 흘려들어가기 위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 필름과 비디오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케이블 TV때와 라디오 등장때의 놓쳤던 기회들로부터 판단하면 진실로 독립된 목소리를 위한 매중매체에의 접근 기구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그 결과는 의심스럽긴 하지만 우리는 이 채널을 얻기위해 싸울것이며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당신은 독립 매체 활동가들과 지지자들이 첨단매체 미래시대에 해 나갈 역할에 대해 읽기위해 기다릴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은 그러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을 도울 수도 있다'는 기술 만능주의자들의 피곤한 말장난을 꼬집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