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다 유키히로
(JCA-NET)
이번 레이버 미디어 행사를 통해 JCA-NET은 국가에 의한 민중의 프라이버시 위협과, 그것에 반대하는 일본의 민중 및 네트워크 활동가(networker)들의 투쟁 경과를 보고하고자 한다.
우선, 보고에 앞서, 일본의 정치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에서는 지난 7월 여당인 자민당과 보수야당인 자유당, 그리고 중도야당인 공명당이 야합하여 소위 "자자공(自自公)" 연립정권을 발족시켰다.
국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한 자자공 연립정권은 많은 민중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9년 8월, '히노마루. 기미가요(국기.국가)', 그리고 도청법(통신방수법) 및 주민기본대장 개정 등 국가주의적인 법안들을 차례 차례로 가결시키고 있다. 현재는 '옴(Aum) 신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의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이 법은 대량살인을 계획한 바 있는 '옴진리교'와 같은 집단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옴진리교 이외에도 반정부조직 등을 감시, 탄압하는 데 이용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자자공은 패전 후 반세기 이상 지켜온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1999년 자자공이 국회에서 통과시킨 여러가지 반민주적·반헌법적인 입법들은 일본 평화헌법의 무력화와 개정을 겨냥한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일본은 전쟁에로의 길을 열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의 국가주의화·군국주의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인 한국 민중들은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시계 바늘을 되돌려서는 안 된다. 일본 민중들은 한국 민중들에게 일본의 국가주의화·군국주의화 반대에 대한 연대를 부탁하는 바이다.
이제 본 주제인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일본 헌법은 검열에 대한 금지와 함께, "통신의 비밀을 침범하면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은 50년전 군국주의 시대에 검열, 도청을 이용한 부당한 민중 탄압이 많이 있었다는 경험과 이러한 탄압이 결국 무모한 전쟁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경찰은 표면상 도청수사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실제로는 경찰에 의해 불법적인 도청이 행해져 온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증거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1986년, 경찰이 공산당간부 자택을 도청했던 것이 발각됨으로써 경찰에 의한 불법 도청 사실이 밝혀져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현재까지도 불법 도청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도청을 했던 경관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그외에도 경찰에 도청기를 납품한 업자의 증언 등을 통해 이 사건이 빙산의 일각임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경찰은 도청수사 합법화를 위한 여러 가지 공작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1997년 도청법을 포함한 '조직 범죄 대책법'이라고 불리는 법들이 제출된 것이다.
'조직 범죄 대책법'은 조직 폭력단 단속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이미 '폭력단 대책법'이 제정되어 있는데도 새롭게 '조직 범죄 대책법'이 제출된 것은, 옴진리교 사건 등 최근의 사건들에서 폭력단 대책법으로는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는 여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97년, 도청법이 제출된 시점에서 JCA 등 일본 네트워크 활동가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하였고, '도청법 저지 네트워크 활동가 연락회'를 결성하였다. 물론 당시 다른 시민단체, 변호사회, 언론인, 노조 등이 연달아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고, 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려워 보였다. 일본의 국회는 '2원제'를 채택하고 있고, '중의원에서 법안이 가결되더라도 '참의원'에서 부결되면 법안 통과는 어렵게 된다. 당시 '참의원'은 법안에 반대하는 야당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여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중의원에서 가결되더라도 참의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도청법 저지 네트워크 활동가 연락회'는 1997년 7월 "지키자! 프라이버시, 멈추자! 도청법 시민의회" 활동 및 심포지움, 연구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였고, 국회의원들에게 전자우편(Email)을 보내는 한편 웹상에서 캠페인을 펼쳐왔다.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여당이 1999년 내로 도청법을 가결하기로 결정한 1998년부터였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네트워크 활동가들은 '네트워크 반감시 프로젝트'를 만들고, 도청법에 반대하는 여러 단체들와 연대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당내부에 도청법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여론 또한 도청법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일본 내 프라이버시 의식은 한국의 프라이버시 의식과 큰 차이가 없다. 특히 도청법이 '조직 범죄 대책법'의 일부로서 당국 측이 "흉악 범죄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일반 시민들은 "나는 범죄와 무관하기 때문에 관계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1998년에는 "소극적 찬성", "어쩔 수 없다"는 응답도 포함하여 약 80% 정도가 도청법에 찬성했다고 한다. 또한, 정당으로서는 사민당과 공산당이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었지만, 야당 제일당인 민주당과 제2당인 공명당이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운동은 우선 여론을 움직여 야당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도청법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문서들을 작성하여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로비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9년에 들어 민주당은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게 되었지만, 공명당은 명확한 반대 입장을 취하지 않아 공명당 설득이 주요한 과제였다.
최근에는 전자프런티어재단(EFF) 전대표이자 현재 미국시민권연합(ACLU)의 사이버권리 사업단(cyber liberties task force)의 의장인 배리 스타인하드(Barry Steinhard)씨를 초청하여 미국 도청문제에 관한 심포지움을 개최하는 한편 한국의 진보네트워크에 협력을 요청하는 등, 인터넷을 무대로 한 국제적인 캠페인도 펼쳤다. 또 많은 시민단체, 노조, 언론인 단체 등에서도 도청법 반대의 목소리가 천천히 높아져 갔다.
특히 도청법의 큰 문제는 전화 도청 뿐 아니라, 인터넷 전자우편 등 디지털 통신 도청이 법안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법안 심의가 시작된 당시 의원들이 인터넷 도청에 관한 지식이 없었고 법안을 제정한 법무부 안에서도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때문에, 네트워크 반감시 프로젝트에서는 인터넷 도청의 기술적인 모순점을 밝혀, 이를 의원들에게 강의하고 언론에 대해서는 자료 제공을 하여 반대 여론을 조직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도가 흔들리고 있었던 공명당이 '자자공' 테두리에 합류하여, 6월 중의원에서 법안이 가결되어 버렸다. 반도청법 운동은 참의원에서의 부결·폐안을 위하여 총력을 집결하고 캠페인에 전력을 다하였다. JCA-NET은 인터넷을 충분히 활용하여, 인터넷 국회중계를 전자우편으로 보내는 등, 실시간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 7월 시점에 도청법 반대 여론을 60%로 높일 수 있었지만, 자자공의 '날치기' 통과로, 8월, 도청법은 가결되었다.
도청법의 문제점과 향후의 대응
한국에서는, 일본의 도청법이 한국의 통신비밀보호법보다도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것 같다. 확실히 한국에서 법원 영장이 없는 감청이 가능하다는 것은 큰 문제이지만, 도청을 허용하는 법들이라는 점에서 두 법은 큰 차이가 없다. 워낙에 일본 경찰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좌파 성향의 단체에 대해 도청수사를 해 왔다. 이번의 도청법은 그와 같은 도청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그 동안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없었던 도청 부문의 예산을 확보하고 연구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번 도청법의 문제점을 열거해 보고자 한다.
첫째, 통신 비밀, 프라이버시가 침범되지 않을 권리는 기본적 인권에 속하는 대단히 중요한 권리이다. 이 권리를 침해하는 도청이라는 행위는 엄중히 관리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
둘째, 일본에는 한국의 통신비밀보호법보다 엄격한 여러 제도가 있어 함부로 도청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제도가 그렇게 제대로 기능할 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일본 도청법에서는 도청대상을 '마약', '총기', '집단 밀항', '조직적 살인'의 네 가지에 한정하고 있지만, 미래 범죄에 대한 도청이나 별건 도청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불법도청을 방조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세째, 도청 현장에 입회인이 입회하여 수사를 감시할 수는 있지만, 입회인은 단지 장치 설치, 적절한 기록 보관 등을 확인할 뿐, 관계없는 내용을 도청하는지에 대해서는 감시할 수 없다.
네째, 도청된 사람에는 도청사실이 통지되지만, 이것은 영장에 기재된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으로, 그 통신대상에게는 통지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프라이버시 침해 사실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 한국 법원처럼 일본 법원도 영장을 대개 조사하지 않고 남발하고 있다. 영장 신청의 99.9% 이상이 발급되고 있다며 현직법관이 내부고발을 한 적도 있다.
여섯째, 인터넷 도청에 관한 기술적 검토가 전혀 없다. 허락된 내용과 관계없는 통신이더라도 전부 경찰에 도청될 가능성이 있다.
일곱째, 도청 기록 취급이 경찰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 기록을 조작하는 등 불법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
여덟째, 시민단체나 언론인들의 활동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
이밖에도 여러 문제점들이 있지만, 도청이라는 행위는 은밀하다는 점에서 대단히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수사방법이다. 현직 경찰관, 검찰관 중에서 도청으로 검거할 수 있는 범죄가 결코 많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종래 수사수법으로 검거할 수 없는 범죄는 도청을 해도 검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요즘 조직범죄 사범은 고도의 도청방지용 암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규모 조직범죄를 검거하는 데에는 도청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시민단체들에게는 도청법이 조직범죄 적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별건 도청 조항 등을 이용하여 시민을 감시하기 위한 법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암호 사용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국가나 제삼자의 도청에 의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PGP와 같은 암호 소프트웨어가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암호화된 통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도청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다행히 소스가 공개된 보안 소프트웨어를 많이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JCA-NET에서는 SSH, PGP 등의 각종 암호기술을 지원하여 이용자들의 통신 안전을 확보하고, 이들 소프트웨어 이용에 관한 기술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최종 목표는 도청법을 폐지하는 것이다. 이미 도청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국회의원, 법조인, 언론인 등과 더불어 도청법 폐지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반 시민들에 대해 프라이버시 의식을 보급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의 프라이버시 의식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도청되어 난처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중대범죄 방지를 위해서라면 할 수 없다"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프라이버시를 위협하고 있다. 시민의 프라이버시 의식 향상이야말로, 도청과 같은 비민주적인 법을 폐지할 수 있는 좋은 무기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프라이버시 의식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
또, 일본 경찰은 오래된 습성이 남아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패전으로 인해 전쟁 전의 조직이 해체되었다고 하더라도, 경찰관료 중에는 아직까지도 전쟁 전의 특성이 남아 있다. 우리들은 경찰의 전근대적인 수사를 항상 감시하고 문제를 계속 지적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국가에 의한 도청 뿐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의 도청에 대해서도 주의를 환기하고 프라이버시 보호를 호소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작업장에서 도청이나 감시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러한 행위들이 점차로 프라이버시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는 점은 큰 문제이라고 하겠다.
한국 민중들은 끈질긴 반대운동을 하여 결국 전자주민카드를 포기시켰다. 우리들도 한국민중에게서 배우고, 도청법을 폐지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