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하다"라는 허구와 "하면 된다"라는 거짓말

- 여성(노동자)의 온라인 진입장애와 극복 전략 -

시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과정, delta feminists)



Ⅰ
. 들어가며 - '사이버시대'의 생략되어 있는 전제들

어찌되었든간에, 이제 '사이버 시대'이다. 최근 심심치않게 등장하고 있는 '지식기반사회'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적 기능과 내용들이 '지식' 혹은 '정보'에 결정적으로 기반하게 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최신 지식과 정보들은 사이버공간 안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 라는 여성에게 '사이버 시대'라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사이버 시대가 '나'를 데려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사이버 시대를 "누가 만들어 나가고", "누가 그 세상에서 행복하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이버 시대'를 말하는 담론 속에는 생략되어 있는 전제들이 너무나 많다.

현재 지배적인 분위기는 컴퓨터가 미래사회에 꼭 필요한 기계이며 사이버공간은 삶을 살아가는데 밀접히 연관된 또 하나의 생활공간이 될 것이라는 예언자적 선언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기로 하자. 첫째, 이러한 논의는 사이버공간에의 '진입'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삼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사이버공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둘째, 도대체 여성(노동자)들의 '필요'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이 선전하는 바로 그것들을 정말 '필요'로 하는가? 혹은 우리가 절실히 원하는 것들을 지금의 사이버공간이 제공해줄 수 있는가? 이제 우리가 '사이버 시대'에 관한 모든 논의에서 생략되어 있는 전제들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불평등은 현실세계에서 사이버공간으로 확장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 사이버공간에 '여성'이 없는 이유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사이버 시대'가 모두에게 행복한 시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기로 하자.

Ⅱ. 사이버공간에 '여성'이 없는 이유는? - 여성(노동자)의 온라인 진입장벽과 '하면 된다'는 거짓말

인터넷과 통신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성비(性比)에서 여성이 30%를 겨우 넘는 정도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주) 더욱 중요한 것은 막상 사이버공간을 돌아다닐 때 느끼는 '체감비율'은 20%도 될까 말까 하다는 점이다. 지난 7월에 있었던 국내의 개인 도메인 등록상황*주)을 보더라도 여성은 7.9%, 남성은 92.1%를 차지해 적극적 이용에 있어서는 현저한 성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주)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가?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컴퓨터 기계 설비를 갖추고 통신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여건에서부터 컴퓨터를 조작하고 사이버공간에 접속하기 위한 일련의 교육과정상의 차별,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컴퓨터 자체, 사이버공간 자체에 각인되어 있는 명백히 남성적인 문화들이 끊임없이 여성들의 온라인 진입을 가로막는다. 여성들은 그 성별로 인하여 사이버공간에의 진입을 보이지 않게 거절당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 동시에 여성들 역시 다양한 위치에 서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녀들은 학생이거나, 사무직 혹은 생산직 여성이거나, 아니면 주부이며 각기 서로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녀들이 온라인 진입에 장벽을 발견하는 지점은 각각 다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지점 - 첫째, '여성'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장벽들은 무엇인가, 둘째, 그 장벽들이 실제로 '개별적인 각각의 여성 집단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 에 초점을 두고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간단히 설명될 수 없는 사이버공간의 성차별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주) {{동아일보, [사이버 공간 우먼파워 거세진다], 1999. 8. 5일자.}}

*주) {{한국일보, [개인 도메인 우리나라 세계 4위], 1999. 7. 29일자.}}

*주) {{김윤정·조수선, [새로운 매체, 새로운 성차별 : 컴퓨터매개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한국언론학회·여성커뮤니케이션연구회 주최 토론회 <사이버스페이스 : 또 다른 성차별의 공간인가> 자료집.}}

1.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 "저는 컴퓨터가 없는데요"

매우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온라인 진입장애의 가장 커다란 부분은 '컴퓨터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정부가 '국민PC'를 떠들어댄다 해도 그것이 '여성들의 손이 닿는 곳'에 놓여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하층계급 및 빈곤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생산직 여성과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전업주부의 목소리이다. '여성의 빈곤화' 현상은 모든 사회에서 관찰되고 있는 경향이며, 남녀임금격차에 대한 최근의 조사에 의거하더라도 여성은 여전히 남성 임금의 70%에도 못 미치는 평균임금을 받고 있다. 이는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컴퓨터를 장만할 만큼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경제적 불평등 하에서, 여성들에게 컴퓨터는 '필수품'이 아니라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설혹 집에 컴퓨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들, 특히 전업주부의 경우는 그 컴퓨터를 자유로이 활용하기 어렵다. 대부분 컴퓨터는 남편을 위해, 혹은 (남자)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방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유망직종으로서의 정보산업'이라는 문구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무직 여성들이 다루는 컴퓨터는 단순업무를 위한 전용 단말기이거나 (은행창구업무를 담당하는 여성들을 떠올려 보자), 아니면 업무 이외의 용도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녀들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컴맹'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확실히 사이버공간은 현실공간(real space)의 연장선 위에 있다. 사이버공간은 차별을 감소시키기보다는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학생이든, 생산직여성이든, 사무직여성이든, 전업주부이든, 컴퓨터는 그녀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주)

*주) {{그렇다고 해서 최근 한국사회에 널리 퍼지고 있는 '인터넷/PC방'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혹자는 궁여지책으로라도 의미가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PC방에서 사이버 공간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공간이동을 위한 별도의 시간과 돈, 그리고 대부분의 PC방을 지배하고 있는 남성적 분위기 등의 또다른 진입장벽들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2. 교육 및 성장과정에서의 체계적 배제들 - "컴퓨터가 무서워요"

컴퓨터는 남성의 기계인가? 그렇다. 어린시절, 변신로봇과 장난감자동차와 축구공과 게임기가 남자아이들의 놀이기구인데 반해 인형과 고무줄과 그림책이 여자아이들의 놀이기구였듯이, 컴퓨터는 나이가 적건 많건 여전히 남성들에게 훨씬 익숙한 기계이다. 컴퓨터는 남성의 영역이며 남성적 세계에 속한다는 인식을 성 전형성(sex stereotype)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반 여성들에게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는 인지작용이어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계층과 나이 등에 관계없이 "컴퓨터가 무서워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성역할 사회화 과정에서의 체계적 배제인데, 가령 '여학생들은 수학이나 과학 과목을 잘 못한다'라는 익숙한 평가는 수학/과학 과목의 연장 또는 응용으로 간주되는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여성들에게 '어려운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두 번째 요인은 컴퓨터 문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남성적 성격이다. 다음 인용문을 검토해 보자.

(......) 한편 컴퓨터에 대한 성전형성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동시에 컴퓨터 문화를 통해 여학생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대다수 청소년들이 지니고 있는 컴퓨터 문화에 대한 인식은 컴퓨터 문화가 기본적으로 남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대다수가 전쟁, 범죄 또는 스포츠 등 남성적인 주제로 남성적인 가치 (파괴, 경쟁, 승리와 권력)를 다루고 있다(Huff & Cooper, 1987)는 현실적인 여건 외에도, 청소년들이 지니고 있는 '컴퓨터 도사'에 대한 인식 또한 기계로서의 컴퓨터에 대한 몰입이나 도전과 모험의 장으로서의 컴퓨터 세계에 대한 관심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가 내포하고 있는 사물지향성과 도전, 정복 등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보다 남성적인 가치들이며 (......) 이러한 문화적 요인들은 여성들에게 컴퓨터와 관련된 세계 그 자체가 전혀 친밀하지 않고 이국적인 경향의 세계로 느껴지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Edwards, 1990 ; Hapnes & Rasmussen, 1991).*주)

*주) {{최문경·윤영민, [정보능력의 성별 격차 : 사회문제인가], {사이버커뮤니케이션 학보} 통권 제2호, 1998.}}

컴퓨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 같은 남성적 성격은 사이버 공간의 젠더문화가 갖는 남성적 성격으로 연장된다. 실제로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정보기술교육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용이 저조한 것처럼, 사이버공간에 여성의 수가 30%를 넘어섰다는 표면적인 수치와는 달리 실제로 사이버공간에서 여성이 발언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횟수와 내용은 현저히 적은 현상 역시 동일한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사이버 공간? 좋은 말이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에 들어서려면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쉽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인터넷/통신프로그램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과 적응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특히 제3세계 여성들에게 있어서 컴퓨터의 일상화란 아직까지 요원한 일이다. 사회화 과정, 교육과정에 있어서 기존의 성역할은 여전히 강력하게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애써 사이버공간에 진입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익히고 그 문화에 적응하기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버텨내기에는 사이버공간이 너무 남성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 등이 여성들이 갖고 있는 온라인 진입장애의 두 번째 측면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우리는 여전히 "여성들을 더 많이 교육하면 된다"는 단순한 낙관적 전망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3. 진입한 이후의 '진입장벽' - 사이버공간의 남성적 문화

2.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점 중에서 후자의 문제를 좀 더 세밀히 다루어보자. 왜냐하면 사이버공간의 남성적 문화는 단순히 사이버공간 '내부'의 문화일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온라인 진입'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진입 '이후'에도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사이버 시대의 도래를 선전하는 남성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발화자들 뿐만 아니라 소위 '사이버 페미니스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조차도, 사이버공간이 가져다줄 수 있는 성평등의 가능성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익명성'이라는 사이버공간의 특수성이 사회적 탈맥락화(social decontextualization) 작용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역시 익명성에 기대어 보다 평등한 상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나, 담론형성이 이용자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이버공간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장(場)이 될 것이라고 하는 주장 등은 매우 문제적(problematic)이다.

이러한 환상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반증은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온라인성폭력이다. 여성적 아이디로 대화방에 들어가면 그 아이디 주인의 실제 성별에 대한 아무런 확인 작업을 거치기도 전에 30초 이내에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주) 또 토론 중의 성희롱이나 여성 비하적인 글의 게시, 원하지 않는 성적 내용의 쪽지나 전자우편, 음란물 등을 집요하게 보내거나 온라인 상 또는 실생활에서 알고 있는 여성 개인정보나 사실날조를 한 글을 온라인 상으로 올리는 사이버 스토킹, 여성관련사이트에의 침입 등 온라인 성폭력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광범위게 퍼져 있다.

*주) {{대한매일, [폭력대처 기술적 제도적 장치 시급], 1999. 5. 13일자.}}

하지만 이렇듯 직접적인 방식으로 가해지는 반여성적인 폭력 이외에 표면적으로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이버공간의 전반적 문화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수잔 헤링(Susan C. Herring)이 [컴퓨터매개커뮤니케이션(CMC)에서의 성과 민주주의 ("Gender and Democracy in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in Rob Kling(ed), Computerization and Controversy, V-C, pp.476-489 (1996)]라는 논문에서 잘 보여주었던 바와 같이, 사이버공간에서의 언어사용, 주제 선택, 글쓰기의 방식과 내용, 글의 길이 등에서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컴퓨터매개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전제 - 익명성이 보장됨으로써 평등한 참여가 보장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기각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온라인에서의 남성지배(dominance) 현상 역시 여성(노동자)들 앞에 놓인 "진입장벽"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사이버 공간에의 진입'이라는 것이 단순히 일회적인 방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또하나의 생활공간으로 삼을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딘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공간의 언어와 논리를 체득하고, 그 문화 속에서 함께 살아 숨쉴 수 있어야 한다. 사이버공간은 여성들에게 살만한 곳인가? 여간한 용기와 뻔뻔함을 갖추지 않는 이상, 전혀 아니다. 아니, 용기와 뻔뻔함을 갖춘 여성이라 할지라도, 그녀들이 고립된 '개인'으로 남아있는 한 그녀는 사이버공간의 '뜨내기'이고 '손님'일 뿐이다. 그녀의 삶과 그녀의 언어와 그녀의 문화는 그 속에서 계속 '거주'하지 못한다.

정리하자면 여성(노동자)들은 첫째, 컴퓨터가 없거나 있어도 만질 수 없고, 둘째, 아무도 그녀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컴퓨터를 조작할 줄 모르며(심지어는 컴퓨터교육을 받으러 와서조차 자기 집에 있는 컴퓨터에 모뎀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다), 셋째, 컴퓨터가 남성의 영역에 속한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로 인하여 끊임없이 컴퓨터에 대한 낯설음을 극복해야 하고, 넷째, 사이버문화의 남성적 성격으로 인하여 온라인에서조차 소수자(minority)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다시 온라인 진입을 꺼리게 되는 악순환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듯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온라인 진입장벽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이버 시대'라는 슬로건은 의심받아 마땅하며, 여성들의 온라인 참여를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진입장벽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하면 된다'는 거짓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도록 만들자.

Ⅲ. 먹고 살기도 바쁜데 우리가 꼭 인터넷/PC통신을 알아야 할까? - '꼭 필요하다'는 말의 허구

이제 두 번째로 검토해볼 것은 사이버공간에의 진입과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여성들은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가? 실제로 많은 생산직/사무직 여성 및 전업주부*주)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은,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내가 인터넷/PC통신을 꼭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일단 배워둬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강력하다. '구체적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필요하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주) {{작년에 한국 주부들을 대상으로한 실증조사에 기반한 다음과 같은 논문을 참조하라. : "본 연구에 사용된 설문조사는 컴퓨터 비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한 주부들의 응답을 살펴보면 응답자의 33%가 "필요를 못 느껴서" 라고 답하고 있으며, 약 28%와 21%의 주부들이 "복잡하고 어려워서"와 "뭔지 몰라서"라고 답하고 있다.", 최문경·윤영민, 위의 글.}}

1. 사이버공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

많은 여성들이 갖고 있는 컴퓨터에 대한 태도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컴퓨터의 구조에서부터 기초적인 소프트웨어의 명칭과 이름, 용도와 사용법에 대해서 대략적이나마 이해하고 있어야지만 컴퓨터를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이러한 태도는 남성들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과 낮은 자신감은 앞서 언급했던 교육 및 성장과정에서의 체계적 여성 배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이 갖고 있는 컴퓨터 자체에 대한 이 같은 두려움은 사이버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에게 인터넷, 사이버, 온라인, PC통신 과 같은 단어들은 '딴 세상 얘기'로만 느껴지는 것이다. 즉, 그녀들은 사이버공간이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하나의 순차적 배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 정보화사회에서 사이버공간에의 진입은 꼭 필요하다 - 사이버공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 컴퓨터를 다루려면 컴퓨터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 컴퓨터의 '모든 것'을 알려면 컴퓨터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 그러나 여성들은 컴퓨터에 익숙해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 따라서 컴퓨터는 무섭다 - 따라서 사이버공간 진입은 어렵다 - 그러나 현재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이버공간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일 뿐, 어쨌든 사이버공간은 꼭 필요하다!

보다시피, 이러한 순환의 시작과 끝은 "어쨌든 꼭 필요하다"는 선언이다. 정말 그런가? 정말 여성들이 사이버공간에 진입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혹시 구체적인 필요가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는 강박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2. 주어진 '필요', 주어지지 않은 '필요'

어쨌든 여성들, 특히 학생과 사무직 여성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여성들을 위한 컴퓨터교육을 따로 실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별도의 비용과 시간을 기꺼이 부담한다. 이 교육은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가? 많은 사무직 여성들이 토로하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컴퓨터를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배워 놓아도 막상 실제로 회사에 입사해 보면 필요한 건 별로 없다는 불만이다. 같은 사무직이라 하더라도 단순업무만을 반복하는 평사원 지위에 대다수 여성들이 몰려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이러한 불만은 설득력이 있다. 그녀들은 어차피 몇 가지 버튼 조작만을 알면 충분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단순업무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애써 배워두었던 DOS니, Windows 니 하는 것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소위 '시대의 흐름'이 강요하는 "사이버공간의 필요성"과 실제 사무직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필요" 사이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괴리가 있다.

두 가지 '필요' 사이의 괴리는 사무직 여성 뿐만 아니라 학생들, 그리고 주부들에게서도 발견된다. 기껏 컴퓨터 교육을 받고도 '아래 한글'만 사용하는 여학생들이나 아니면 아예 거의 집에서 연습조차 해보지 못하는 주부들에게 있어 '컴퓨터 교육', '통신교육'이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결국 '필요하다'는 대세에 뒤쳐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컴퓨터를 배우지만, 사실상 여성들 각자의 일상적 삶에 있어서 유용한 교육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어진' 필요와 '주어지지 않은' 필요 사이의 괴리는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여성에게 유용한 정보'라고 말해지는 것들이 정말 여성에게 유용한가 라는 문제이다. 최근 사이버공간에서 '우먼파워'가 거세어지고 있다는 평판이 많은데, 이들이 언급하고 있는 사이트들을 보면 대개 홈쇼핑, 다이어트, 요리, 건강, 미용 등의 주제로 요약된다. '여성적인 것'으로 분류되어온 기존의 성역할 구분을 그대로 유지·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들은 주부들이 사이버 공간에 접근할 경우 그녀들이 언제나 '주부로서' 혹은 '어머니로서'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서울시 소재 복지관이나 대학교 부설 교육기관, 또는 사설 학원 등에서 컴퓨터를 수강하고 있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경험에 대해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주부들이 컴퓨터 교육을 받게 되는 동기는 가정생활과 관련된 기능적 요인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감을 얻기 위한 보다 정서적인 측면이라고 밝히고 있다(최영순, 1997).

이제 우리는 세 가지 '필요'들을 구분해야만 한다. : '사이버시대'를 강조하고 누구에게나 그것이 꼭 필요할 것이라고 강요할 때의 '추상적이고 강박적인 필요', 여성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필요로 할 것이라고 '가정'되어 온 '필요', 그리고 아직까지 제대로 개발된 적도 말해진 적도 없지만 분명 각자의 상황에서 가지고 있을 여성들의 잠재적인 '필요'.

3. 질문을 바꾸기

'필요'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각각의 여성집단들 - 따라서 우리 자신들이 사이버공간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는 필요로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발견해야 한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보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정보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그 중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다. TV 리모콘을 사용하는 데 몇 개의 필요한 버튼만 알면 되듯이, 컴퓨터 활용이나 사이버공간에의 진입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찾고, 나누고, 자신의 의견을 발언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부들이 사이버공간에 접속해야할 필요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또는 '아이들이 포르노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홈쇼핑을 위해서' 라고 강변함으로써 그녀를 무임금 가사노동의 전형적인 삶의 패턴 속에 계속 갇혀있게 하는 그 허구적인 '필요'의 목소리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우리와 상관없이 앞서가고 있는 사이버공간에 허겁지겁 쫓아가야만 하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저 사이버공간의 남성성 그 자체에 저항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컴퓨터가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사람을 맞추어야 한다는 발상은 애초에 말이 안되는 것이다. 우리 여성들의 필요에 컴퓨터가 맞추고, 우리 여성들의 속도에 맞게 필요한 만큼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으면 되는 일이다.

따라서 '먹고 살기도 바쁜데 꼭 인터넷/PC통신을 해야할까?'라는 질문은 바꾸기로 하자. '왜 꼭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차피 우리들 자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미 사이버공간에 진입한 소수의 여성들이 그 안에서 발견한 위험이 무엇이고 또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갖가지 진입장벽 앞에서 가로막힌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필요'가 아니라 정말 쓸모 있고 삶에 있어서 중요한 '여성의 필요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Ⅳ. '다른' 정보화를 꿈꾸며

정보화 사회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비가시적으로 만들면서 '네티즌'이라는 중성적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화 사회이다. 사이버공간과 정보화에 대한 모든 논의들이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이 사실상 여성(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결정적인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 나름의 '다른' 정보화를 상상하도록 하자.

* 우리는 우선 다양한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온라인 진입장애의 문제들을 집단별로 세분화하여 명백하게 문제로서 제기할 필요가 있다. 학생, 사무직 여성, 생산직 여성, 전업주부가 겪는 어려움은 각각 상이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 네 개의 집단은 더 세분화될 수 있다). 정확히 어떤 진입장벽의 문제들이 은폐되고 있는지를 밝히고, 각각의 조건에 알맞는 정책들을 개발하고 실행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 특히 여성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보다 진전된 고민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은 그녀들 개인의 탓이 아니다. 따라서 성역할 구분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모든 보통교육의 체계와 내용에 대한 여성운동진영의 문제제기는 사이버공간에의 여성 진입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또, 컴퓨터 및 정보통신기술의 교육에 있어서도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고려한 '다른 방식의 교육', '다른 내용의 교육'이 개발되어야 한다.

* 사이버공간에 이미 진입해있는 여성들조차 절실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더 많은 여성들을 사이버공간에 들어가게 하기만 하면 뭔가가 바뀐다는 생각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옳다는 의미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이버 공간에 진입한 이후에도 여전히 여성이 소수자(minority)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이버공간 자체가 남성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이버공간의 언어와 논리, 문화 전체를 바꾸려는 사이버 여성들의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이버공간을 둘러싼 갖가지 진입장벽들이 여성들을 온라인상의 '손님'으로 만들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성별을 감춤으로써 지배적인 논리(온라인에서의 남성지배)에 편입하기보다는 오히려 '손님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 사이의 연대라는 관점이다.

*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보다 유연하게 사고되어야 한다. 기존에 '여성적인 정보'로 분류되어 온 것들 - 육아, 미용, 다이어트, 쇼핑, 오락 등 - 에 여성들의 '필요'를 미리 한정짓는 모든 경향에 대해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대체 여성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그리고 '필요'라는 것은 또 얼마나 변화하고 확장될 수 있는가? 정보화가 진척될수록 여성들이 정보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해가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생산-유통-소비가 여성들 자신의 사이버공동체(community) 형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정보는 여성들에게 있다.

아무도 여성들이 겪는 온라인 진입장애들을 보살펴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우리 손에 쥐어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무도 우리의 '잠재된' 필요를 대신 발견해주지 않을 것이다. 성평등과 민주주의라는 신화를 창출하고 있는 사이버공간에 관한 모든 담론들의 허구성을 직시하자. 이제 여성들은 여성의 손으로 온라인 진입장벽의 문제를 발화하고 여성의 목소리로 그것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