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네트워킹에 대한 제안
김명준 (노동자뉴스제작단)
1, 한국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전사(前史)
한국의 노동자 비디오 운동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87년 이후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노동운동의 조직적 발전과 비디오 산업의 형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은 전문적 영상 운동가라는 주체역량과 맞물리면서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다양한 작품들과 여러 단체들의 활동이 이어져온지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현재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노동자 뉴스 제작단의 활동이다. 노동자 뉴스 제작단은 89년에 만들어져서 이후 지속적인 활동을 해온 단체로서, 제작, 촬영, 교육, 영상동아리 조직화, 연구, 상영, 국내외 연대 등 일곱가지 영역을 활동의 축으로 삼고 있다. (htpp://www.lnp89.org)
10년여의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역사 속에서, 독자적인 전문단체의 수자도 증가했으며, 동시에 노동조합 운동내의 노동자 영상 동아리 활동도 90년대 중반이후 뚜렷하게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한국의 노동자 비디오 운동은 전문제작 활동과, 대중적 창작 활동 양측면에 있어서 태동기를 벗어나 일정한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과도기에 있는 것이다.
2, 노동자 비디오의 상황과 과제
(1) 주체 역량
1) 전문 제작 단체
노뉴단의 활동 경험에서 볼 수 있듯, 전문단체의 발전수준은 제작력과 조직력에 있어서 태동기를 벗어난 상태라고 할 수 있으나 제작과 교육의 주체, 그리고 정책적 과제를 제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 전문단체의 역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 노동자 영상 동아리
최근 몇 년간 노동자 영상 동아리의 활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아직도 안정적인 제작활동, 특히 투쟁시기와 일상 시기를 아우르며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아리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노동 영화제 기간동안의 세미나 자료 참조)
3) 노동운동내의 영상운동에 대한 이해 정도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영상을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대해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 정치 운동은 전사회적 차원에서 영상 분야에 대한 뚜렷한 정책적 방향을 지니고 있지 못하며, 전문단체 혹은 노동자 영상 동아리 등의 활동에 대한 지원방안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일부 조합의 경우 영상 분야를 전담하는 담당자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노동조합 운동내에서 영상분야의 중요성, 그리고 나아가 문화활동의 중요성은 아직까지 그 실천적 검증 결과에도 불구하고 매우 미흡하다. 이러한 인식의 부재는 노동자 영상운동의 재정적 어려움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2) 정책적 이슈
1) 배급의 문제
80년대말부터 시작된 노동조합 체계를 통한 배급의 경험은 여타 독립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가는 기초를 제공해주었지만, 아직까지 그 절대적 수준은 지극히 미흡하다. 민주노총의 건설은 배급의 양적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도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작품들은 잠재적인 수요자와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TV 배급구조나 극장 상영 구조라는 과제의 설정 이전에, 우선 비디오 테이프를 노조, 학교, 사회단체 등에 보다 조직적으로 배급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2) 퍼블릭 엑세스를 비롯한 민주적 미디어 운동에의 개입
최근 한국은 퍼블릭 엑세스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국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아울러 국민주 방송 운동의 진행에서 볼 수 있듯, 진보적 영상 제작자들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채널에 대한 대중적 욕구가 잠재하고 있음도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주류 미디어에 의해 가장 극심한 공격을 당하고 있는 노동운동 진영은 이러한 미디어 구조의 민주화와 관련해서 급진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지 못하며, 특히 우리 스스로의 대안적 영상 미디어 구조를 만들어내는 활동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퍼블릭 엑세스 등과 같은 구조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이 현실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노동조합과 정치운동의 적극적인 검토와 반성이 필요하다.
3) 노동운동의 영상 분야에 대한 강령적 정책의 내용 확보
나아가 그러한 검토와 반성은 사회변혁을 주도해야 할 노동운동이 미래사회의 영상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강령적 내용을 확보하는 것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은 동시에 현재의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실천방안과 상호 침투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형성해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3, 국제적 네트워킹을 위한 과제
90년대 이후 국제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연대 활동은 다양한 수준에서 전개되어 왔다. 특히 인터넷을 매개로 한 교류와 각종 회의 (한국의 레이버미디어, 미국의 레이버테크)를 통한 직접적 토론, 그리고 작품의 상호 배급 등은 새로운 세기를 예비하는 주요한 우리의 경험이다. 그러나 괄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제적 네트워킹의 본격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고 있다.
노뉴단의 경우, 노동 영화제, 그리고 자체 작품의 해외 배급, Videazimut의 활동 등을 통해서 나름대로 국제적 네트워킹의 경험을 쌓아온 바 있다. 이를 근거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국내외의 여타 단체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1) 일상적 정보 교류
이미 이번 노동영화제서 볼 수 있듯 노동자 비디오 운동가간의 국제적 교류는 2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상적인 교류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전세계 노동자 비디오 운동, 영화 운동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조직적 네트워크는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웹 사이트 및 메일링 리스트 구축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 출발점으로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삼아 노동자 비디오 운동 메일링 리스트를 구축하여 일상적 정보교류를 진행하자. 매월 1회의 리포트를 포스팅하여 이를 기초로 뉴스레터를 작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참여가능한 단체를 중심으로 노동영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도 검토할 수 있다.
(2) 노동영화 영상 데이터베이스
이미 일부 노동자 비디오 운동가들은 자체 웹 사이트를 통해서 동영상 비디오를 서비스하고 있다. 이러한 동영상 서비스는 국내외적으로 노동 운동의 현실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고리이며, 주류 미디어를 통해서는 파악하기 힘든 진실을 대중적 수준에서 공유하는 주요한 매개가 된다.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를 보다 조직적인 형태로 만들기 위해 각국 단체의 동영상을 링크하고 그러한 동영상 디지털 작업이 불가능한 국가에 대해 디지털화 작업을 대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인터넷 영상으로 보는 월간 국제 노동 뉴스와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웹 작업을 진보 네트워크, 프리스피치 TV 등과 같은 네트워크와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3) 국제적 노동영화제의 조직화
한국, 미국의 노동 영화제, 그리고 기타 남아공, 프랑스 (확인 필요)의 노동 영화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세계각국에는 노동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제가 일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영화제간의 정보교류를 활성화하고 타국에서도 이러한 컨셉의 영화제를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데이터베이스의 성과를 기초로, 혹은 그러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한 방안으로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의 데이터를 집중하고, 나아가 각국의 프로그래머간에 상영작의 조사 및 섭외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을 구상해볼 수 있다.
(4) 공동 제작 프로젝트 - Working TV, WTO의 사례
이미 부분적으로 공동제작의 경험은 존재한다. 캐나다의 Working TV의 경우 작년의 한 작품을 통해서 한국 및 이스라엘의 활동가와 함께 공동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인터넷과 비디오, 그리고 휴대전화를 결합하는 모범적 사례를 제시한 바 있다. 또한, 곧 열리게 될 밀레니엄 라운드에 대항하는 독립 미디어 운동가들은 시애틀에서 독자적인 독립 미디어 센터를 구축하고 위성방송을 실시할 계획을 지니고 있다.
동영상 자료의 교류라는 초보적인 연대활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예를 들어 계간 세계 영상 노동 뉴스와 같은 형태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경우, 국제 노동조합 연합 조직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독립적 운동가의 협의에 기초한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5) 민주적 미디어 운동과의 연대
AMARC, Videazimut, APC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적 미디어 운동 국제 조직내에는 노동자 비디오 운동가들이 일부 포진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노동자 비디오 운동가들은 이러한 민주적 미디어 운동 조직과 별다른 관련을 지니고 있지 못하며, 그에 따라 대안적 미디어 운동 일반과 함께 주류 미디어에 대항하여 싸워나가는 전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비록 그러한 민주적 미디어 조직들이 진보적 노동운동과 어떠한 수준에서 함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전체 사회를 대표하는 노동자 비디오 운동이 되기 위해 각 활동가들은 이러한 조직의 활동에 주목함과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내부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영상운동의 대표적인 조직인 Videazimut에 대한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조직적 참여를 고려할 수 있다.
(6) 정책적 과제 및 실천 방안 교류
세계 각국의 노동자 비디오 운동가들은 다양한 수준에서 정책적 과제를 공유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볼 수 있듯 그 수준은 다양하다. 노동자 비디오 운동 단체의 활동 방식, 독자 채널 확보 운동의 전망,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노동자 비디오 운동의 역할, 퍼블릭 엑세스 구조와 노동자 비디오 등에 이르기까지 각국은 여러 영역에서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각각의 수준을 포괄하는 구체적 토론의 활성화는 작품 활동의 내용만으로 제한되지 않는 노동자 비디오 운동 네트워크 조직화를 촉진시키는 구체적 내용이 될 것이다. 특히, 진보적 노동운동의 영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대한 강령적 내용의 확보는 그러한 네트워크가 반드시 포괄해야 할 주요 영역이다. 노동운동은 미래의 영상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
4, 대중적 국제연대와 교육의 매개체로서의 노동자 비디오
"맨 땅에 헤딩한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한국, 그리고 세계 각국의 노동자 비디오 운동은 수많은 장애물을 뚫고 현지점에 이르렀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진보적인 노동운동 진영의 책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있으며, 특히 대중적인 국제연대 및 교육의 중요한 매개역할을 수행하는 영상 분야 활동가의 책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여러 제안에 대한 현실적 검토와 실천 계획의 도출을 통해서 전세계 노동자 비디오 네트워크의 건설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아직도 심각한 장애물은 많이 남아있지만, 우리는 이미 지난 5년간 많은 경험을 쌓아왔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준비를 어느 정도 진행해온 상황이다. 우리의 작은 실천들을 기초로 언젠가 노동자 영상 인터내셔널이 국제적인 노동운동의 주요한 기둥으로 형성될 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