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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위한 대화
Peter
Waterman (Retired from International Social Science)
피터 워터만은 이메일을 통해 이미 잡혀 있는 다른 일정 때문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평조합원 전략' 워크샵에 참가할 수 없다는 걸 아쉬워하면서 아래 첨부된 원고를 보냈다. 그는 자신이 주로 국제적인 수준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자신의 문제의식은 많은 부분 세기말 현장 보고서팀과 일치한다면서 이 글에 대한 다양한 코멘트와 세기말 현장 보고서팀 워크샵의 내용들을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통의 문제의식에 대해 이후에도 온 라인 상에서 지속적으로 토론이 오갈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발췌, 번역한 워터만의 원고를 첨부해 모두와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고자 한다.
나는 1960년대에 나온 Philip Roth의 수치스러운 소설 Portnoy's
complaint를 회고한다. 200페이지에 달하는 즐거운 이야기 뒤에 나오는 괴로운 성적
고백은 우리가 정신과 의사의 방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국제적이고 3개 국어로 진행되는 전자 회의는 ILO의 국제 노동
연구소(IILS)가 운영하는 것으로 동일 주제에 대한 4년 짜리 연구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COL21은 ILO와 국제자유노련이 공동 후원하는 회의이다.
이 회의는 공식적으로는 1999년 9월 중순에 출범했지만, 그 회의 사이트는 1998년부터
등록된 기고문 리스트를 그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가입 등록을 했던
1999년 8월 중순에, 그 사이트에는 1998년 12월 회의가 보고되어 있었고, 또한 3명의
참가자의 기고문도 출판되었다. 거기에선 또한 논문의 핵심 분야를 다룬 글인 'Background
Document'도 출판했었다.
- 고용과 노조 조합원의 변화 양상
- 노자 관계의 변화, 노조의 공적인 지위
- 불리한 경제 환경의 영향
- 경제의 국제화에 의해 일국 내 노조들에게 부과된 위협/도전
이 회의는 노동조합과 노동 연구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공개적이고
어떠한 종류의 대화도 용인되도록 계획되었다. 그래서 2명의 오프닝 연사들 - ILO의
회장인 Juan Somavia와 국제자유노련의 사무관인 Bill Jordan - 에게 질문에 응답할
기회가 주어졌다. 초청 연사들은 정기적으로 위의 기록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토론자
역할을 하도록 초대될 것이다. 좀더 상세히 기술하자면, 주제는 이렇게 확장된다.
- 고용과 발전
- 법과 노조
- 지구화에 대한 반응들
- 노조와 구조조정
- 단체 교섭과 사회적인 대화
- 비공식 부문과 주변화된 노동자들
- 사회적 보호
- 신규 채용과 조직화
- 정치 전략(정당과 비정부기구들과 맺는 관계)
- 여성
- 어린이
- 청년
-노조 구조 및 임무
이 행사는 적어도 국제적 노동 운동의 일부분으로서 웹 상에서
매우 두드러졌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국제적 노동 운동의 일부분으로서 정통성까지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관심은 그 시작이 외관상으로 나타나는 이 행사의 이데올로기적·제도적
혹은 심지어 전자적 파라미터에 의해서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이데올로기적 파라미터: 어떤 것이 질문되어야 할 것인지 가정한다면?
여기서 나는 1999년 COL21 사이트에 올려진 첫 3개의 '비상호적인'
논문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 논문들은 ILO 논문들이 아닌데도 분명히 ILO가
초대하고 올린 것들이었다. 그 논문들은 적어도 계획된 행사의 한계와 초기 이데올로기의
범위를 제시한다는 이유로 채택되었을 것이다.
1. Henk Thomas(1999, 발전 연구소 소속으로 노동 연구를 하는
네덜란드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교수)의 COL21 논문에서 나온 두 가지 인용문은
자본주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발전을 무비판적으로 가정할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국가간 위계를 어디에서든 여성들이 열등한 지위에 놓여 있는 - 즉, 남자 상급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 조합들과 더불어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분석을 보여준다.
"서유럽 나라에서는 ... 노동운동이 보다 폭넓은 사회적 의제가 되는 이슈들을 제기하는 역할에서 고도의 정통성을 계속해서 획득해 왔다. 그 하나는 지구적 경쟁력이 노동시장의 주된 특징과 더불어 서유럽 경제 구조의 재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때, 80년대에 임금 억제 요구처럼, 경제 재구조화에서 노동운동이 담당하는 역할을 언급할 수 있다. 또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재구성이라는 예에서 보이듯이 기업 재구성에서 노동조합이 담당해온 뚜렷한 역할은 노조의 힘과 잠재성을 보여준다. ..."
"특별한 정책 이슈가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아직 조직화된
노동의 힘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을 'development co-operation'을 형성하게끔 한다. 'development co-operation'
- 쌍무적이든 다각적이든- 은 때때로 노동조합운동에 후한 기부금을 제공했다. 예컨대
특별 보조금이 '기부자'인 노동조합에 제공되어 '수혜자'인 노동조직들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한 자금은 일국 내에서 모아질 수 있고
그리하여 강력한 국제 협력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또한,
ILO나 국제자유노련의 각 지역 본부를 통해 자금을 다각적으로 모으는데 강한 선호도를
가진 덴마크와 같은 경우들이 최근 기부 관련 영역에서 일익을 하고 있다."
나는 서구 사회 노조의 정통성 자체에 대해서 언급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져 버린 미국 자동차 노조의 회사-노조 친목 모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요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무비판적으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심층에 깔려있는 제도적 틀,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에서의
노동 조합들의 '발전적' 기능, 전자(노조)가 후자(국가들)과의 관계에서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후원자/전도사/중개자로서 행위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발전'은
어디에서든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의미한다. 게다가 네덜란드나 덴마크 같은 나라에
있는 가장 발전된 노조/가장 발전된 자본주의라는 관계, 그리고 개발 도상국에 대한
확장된 국가 재정 지원 프로그램과 더불어, 발전된 자본주의가 발달된 노조를 의미한다는
가정이 있다. 특히 지구화에 따라 우리가 일등이 꼴찌가 될 수 있고 꼴찌는 일등이
될 수 있는 격돌하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있다는 관념은 Thomas에게 낯선 개념인 것
같다. 즉, 이 논문의 초반부에는 의문시화되어져 왔고 문제시되어져 왔던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 분석은 위기감이 결여하고 있고, 학술적이거나 이론적인 관심,
사회적 가치보다는 정책이나 'development co-operation', 특히 ILO와 국제자유노련을
위한 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을 동기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글은 국제적
노동의 위기가 그들을 위한 위기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기구들에게는 하등의 가치가 없을 것 같다. 혹은 Thomas와 달리 지구화의 실재를
인정하거나 적어도 지구화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등의 가치가 없을 것
같다.
Robert Taylor는 런던의 'Financial Times'의 노동전문가이다.
그의 기고문(1999)은 비슷한 분야를 다루는 Breitenfellner와 Ramsay의 기사와 일맥상통한다.
그의 기고문 역시 삼자협조주의를 가정하고 있고 그래서 이것은 아예 토론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세계에 대한 삼자협조주의적 관점에 따라 그는 노조에 세계적인 자본주의를
적응시키는 것만큼 세계적인 자본주의에 노조를 적응시키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부기구들은 이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명백하게 노동조합은 그들의 접근 방법이 성공적인 시장경제의 창조와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노조의 권리는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지만 또한 산업에도 이익이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는 노동조합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협조적 통치를 통해서 노조들을 사회에 성공적으로 통합시키고 있다.
노조는 점차 지구화되는 새로운 세계에 거의 보조를 맞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만약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그들은 근본적인 변신을 꾀해야 한다. ...
성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조들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비정부기구들과
연계를 맺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변화하는 세계속의 국가에 대한 1997년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은 노조가 특정 작업장이나 산업의 범위를 넘어서 환경, 공동체, 여성 집단들과
더불어 더 넓은 시민사회를 포괄하길 주문하는 정책을 요청했다. 그 보고서는 이렇게
함으로써 더 활발하고 윤리적으로 책임감 있는 사회적 시민의식의 부활을 돕고 또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통합하여 공통의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것은 권리와 서비스의 일차 제공자에서 간접적이고 자율적인 시민 연합들을 고무하는
다양한 활동을 가능케 하는 자로 역할이 변화된 국가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세계은행이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빨리 자신의 주도권에 복무하도록
채택하고 적용시키는지를 발견하고 나 자신도 다소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최근
수십년 동안 스스로를 자본, 국가, 기술관료주의, 가부장제와 동일시해온 운동들
간의 사회적 제휴를 정당화하는 국가 조직 그리고 국가간 조직에 테일러가 의존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Richard Hyman(1999b)는 산업 관계를 연구하는 교수이고, 노동에
관한 맑스주의 이론가로서 유명하다. 그의 준거점은 '산업 평화', '발전', 혹은 '삼자협조주의'라기보다는
분명히 노동운동이다. 다양한 지구적 위기들에 직면하여, 그는 노동운동 자체 내에서
해결점을 찾거나 노동운동 주위에서 해결점을 찾는다. 그의 중심 주장은 사상을 둘러싼
새로운 전투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노동 진영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는 안전,
기회, 민주주의, 공동체, 그리고 연대를 지향하는 새로운 노동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이것은 더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국제 노조 활동가들에게 어필하는 사려깊고 자극적인
제안이다. 무엇보다도 그 제안은 현재 혹은 미래의 노조 활동을 다시 그것의 뿌리로
연결시키고 더 폭넓은 사회적, 국제적 역사에 재연결되게 한다.
"'영원한 연대'는 노조의 가장 기본적인 슬로건 중 하나다.
연대는 이중적인 뜻을 가진다. 즉, 조합원들이 서로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 그리고
좀더 강한 자들이 좀더 약한 자들을 지지하는 것. 좀더 폭넓고 도덕적인 집단 행동의
기반들은 많은 나라에서 침식되어 왔다. 연대가 존속되려면, 그것은 새로이 창출되어야
한다. 동시대 속에 있는 노동과 노동시장 상황의 다양성은 전통적이고 표준화된 노동조합
의제가 실제적으로 유용할 수도 이데올로기적으로 반향을 일으킬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기존의 기계적 연대라는 형태로부터 새로운 유기적 연대로 이행해야 한다. ... 그러한
모델을 창조하려 하는 모든 기획은 개별 노조의 지부 사이에, 일국 노동 운동 내에
있는 노조들 사이에, 각국 노동자들 사이에 있는 상황과 관심들의 차이들을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 다양한 관심들의 제휴와 통합은 끊임없는 협상의 과정을 요구하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진정한 연대는 다수결 투표에 의해서도 행정적 명령에
의해서도 부과될 수 없다. 연대의 성취는 노동조합이 확신을 다시 찾고 조합원들과
시민사회 구성원들 모두를 '정의의 검'으로서의 사명을 가지도록 설득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Hyman의 전략이 노동운동을 비자본주의적, 반자본주의적,
탈자본주의적 전제로부터 시작되는 다른 것들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또한 국가들 사이의, 노조들 사이의, 노동자들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의
과정'이 ILO가 개최하고 ILO 및 국제자유노련이 후원하는 포럼에서 과연 실행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제도적 파라미터: 구조의 이데올로기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이론적·이데올로기적·분석적·전략적인
발언 밑에, 안에, 그리고 주변에 있는 권력관계에 점점더 민감하다. '21세기 조직화된
노동 회의'(COL 21)는 ILO가 주최하고 ILO의 회장과 국제자유노련의 사무관이 후원하고
있는데, 이는 ILO의 연구소 프로젝트에 기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토론은
ILO에 의해 모니터되고 있고 모든 부분이나 일부분이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하나의 과정의 일부로서 간주되어야 하고 따라서 분석과 도전에 개방되어야
한다. 구조가 그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담지한다는 개념은 Jeff Harrod에 의한 ILO
비판에서부터 나온다.
ILO와 국제자유노련은 모두 오늘날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이미 제시된 것처럼 이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혁명의 결과이다. ILO와 국제자유노련은
자본주의 발전의 일국적/산업적/식민주의적 단계의 산물이다. 양자는 모두 대규모
일국(혹은 국제적) 사회 운동들, 갈등들,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세계전쟁의 산물이다.
ILO와 국제자유노련의 선조인 IFTU는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사회 갈등에서 출현했다.
그들은 조합화된 노동자, 자본, 국가 사이의 놀랄만큼 오래 지속되고 튼튼한 국제적
계약을 나타낸다. 그들은 또한 공동으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혁명주의에 대해
세계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대안을 제공해 온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국제자유노련은
마찬가지로 동부 권위적인 동구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적 서구 자본주의자들 간의
냉전으로 이어진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국제자유노련과 ILO는 모두
그것의 구성요소들이 민족-국가 정체성과 관련하여 정의된다는 의미에서 문자 그대로
이라는 점에 입각하여 정의되는 국민-국가의 구성요소라는 의미에서 문자 그대로
국가 간(inter-national) 조직이다.
이 기구들은 공동으로 이자 협조주의적이거나 삼자 협조주의적인
노동관계에 관한 자유주의적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인 기획을 표현해 왔다. 19세기의
노자간 '사회 문제'가 20세기에는 중립적인 중재자로 간주되는 국가와 더불어 '사회적인
타협'이 되었다. 1945년 이래로 ILO와 국제자유노련은 관심의 초점을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자본주의 핵심에서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자본주의 주변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들의 기본 담론의 초점은 '산업 평화'에서 '발전'으로 옮겼다.
위의 모든점을 고려할 때, Bill Juan과 Juan Somavia(1995년
사회정상회담의 의장)은 그들의 조직을 노동자를 대표하고 토의하며 타협하고 21세기를
위한 규범을 정립하는 중심적 국제기구로 회복하는데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ILO가 경쟁적이고 갈등하는 자본들과 국가들의 법 상위에
있는 국제법에 기여를 하고있는 한, 그들은 이의 유지·확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는 Held는 심지어 ILO를 그 삼자협조주의적 구조와
더불어 시민 사회에 개방되어 있는 UN 기구들의 개혁된 체제에 대한 일종의 모델로
보기까지 한다. 우선, 나는 자신의 구성원을 대신하여 결정을 할 수 있거나 또는
구성원에게 '최선의 실행' 기준을 부가할 수 있는 자본의 실질적 대표자들이 참가할
의사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더욱이 나는 노동자들이 자본가/경영자들을 어떤 종류든
국가 간 기구로 조직화하는 것에 찬성해야 하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장 급진-민주주의적인
지구적 운동들은 그러한 것들 안에서 자본이 행사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ILO의 현재의 위기 나는 현재 ILO에 대한 전문가라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상호기구의 개발과 더욱 중앙집중적이고 적절한 신자유적이고
세계화된 자본주의로 개발에 의해 ILO가 직면한 도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하고
있다. 또한 ILO자신과 그의 지원자들의 관심사로써 ILO가 자신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세계화,
세계은행, 그리고 세계무역기구와 적응해가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Breitenqellnev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ILO는 그것이 삼자협력체라는 점에서 유일하며. .미래의
"지구적 협력"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예를 제시한다. 만약
ILO가 강화된다면 세계경제조직에 있어서 WTO,IMF와 나란히 위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제노련(1996)과 방어적이고 외교적인 투로 ILO 이사회에 전한 바와 같이 ILO는 반드시 "...ILO의 절차들이나 구조를 수정하기 위한 어떤 조치든지 조직의 제정된 위임권 및 그 목표를 발전시킬 목적에 철저히 부합해서 취한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 [ILO는 반드시] 사회 정의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서, 특히 IMF, 세계 은행, UNDP(UN
DEVELOPMENT PROGRAM), WTO와의 균형 잡히고 강화된 협력을 통해서 국제적인 경제·사회
정책 결정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역할을 계속해서 증진시켜야 한다."
ILO의 문제는 주요 기업, 자본가 권력, 그리고 이 행렬에 관련
다른 당사자들이 ILO와 오랜 노동자 권리 및 절차들을 '자유 무역'의 장애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통적 자유주의 기구들 혹은 사회-민주주의적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ILO도 이러한 당사자들에게 자신이 자유 무역의 장애물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는 점이다. ILO가 이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주된 방법의
하나는 새로운 [기본원칙 선언](Declaration on Fundamental Principles, ILO 1998)을
통해서 각국 정부들이 전통적 기준을 허용하되, 실제로는 그것들을 비준하거나 적용하진
않게 한 것이다. 앞서 언급된 운동 단체인 [개방 세계 회의](Open World Conference)는
수백 노동 운동의 서명을 받아 WTO 1999 회의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1998년 6월, '국제 노동 기준을 보증하기 위한 덜 규제적인 틀'을 창출하라는 WTO와 IMF의 압력하에 ILO는 새로운 '노동에 관한 기본원칙과 권리 선언'(Declaration on Fundamental Principles and Rights at Work)을 채택했다. 이 선언에서 장려된 원칙과 권리는 7개의 현존 ILO 협약과 일치한다. 1999년 6월 20일, 독일 쾰른에서 열린 G8 정상 회의는 이 새로운 ILO 선언의 '효과적인 실행을 촉진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 서명자들은 명확히 단언한다. 이 ILO '노동에 관한 기본원칙과
권리 선언'이 전세계의 노동 인구에게 가치있는 것이 되려면, 이에 상응하는 7개의
ILO 협약은 시애틀에서 열린 WTO 정상 회의에 참가하는 모든 정부에 의해 비준되고
실행되고 완전히 의무화되어야 한다!(OWC 1999a)
국가 연합 기구로서 ILO는 자신이 마련한 기준을 부과할 수
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수사학이 언제나 실행보다 중요했다. 이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기반하려는 운동이나 조직에서는 별로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ILO에 의해 창출된 이미지는 아니다. 그리고 이제 ILO는 이전에 가졌던
그러한 권력을 더욱 감소시킴으로써, 그리고 수사을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째는 양보 혹은 유화 정책이
근본주의에 맞서 채택할 수 있는 현명한 태도냐는 것이다. 노동과 민주주의의 역사
전체는 정반대가 사실임을 보여준다. 두 번째 질문은 ILO가 국제 노동자 권리 기구이기보다는
국제 금융 내지 경제 개발 기구로서 자리잡으려 애쓸 필요가 있기나 하냐는 것이다.
감히 이 질문에 답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ILO는 21세기의 지구화
속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노동 문제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회 세력에 비추어 단지
방어나 개혁이 아니라 재창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것 같다.
현재 국제자유노련이 처한 위기. 국제자유노련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 기구는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붕괴 자체에 의해 무력화되어
왔던 것 같다. 창설 이래로 국제자유노련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과 종종 깨지기 쉬운
결합력은 대개 그것의 적의 적이 되는 것에 의존해 왔다. 자신의 악의 제국을 잃어버리자,
국제자유노련에게는 극히 강력하고 공격적이며 교묘해져 왔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삼자 경기에서 경쟁하는데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적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국제
사면 위원회의 족적을 보면, 국제자유노련이 자본주의 중심국인 미국(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수사는 최고로 구사하면서도 ILO 기준은 국내·국제적으로 최소한으로 실행하는
국가)을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음을 증명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 기구는 15 페이지에
걸친 상세한 성명서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미국은 7개의 핵심 노동 기준 중 단지 하나만을 비준했을 뿐인데,
유엔의 국제 노동 기구(ILO)의 의해 상술된 바에 따르면 이 기준은 노동조합 결성권,
교섭권, 차별과 어린이 노동 금지를 포함한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비준 기록
중 하나다...
하지만 국제자유노련은 국제적 노동진영의 운동과 이와 관련된
이슈에 대한 여론에 호소하는 데는 전혀 혹은 거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들을
가시적이고 효과적인 행동으로 동원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사실
나는 국제적 노동진영 네트워크인 [하나의 세계 회의](One World Conference)를 통해서야
겨우 이 문서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구화에 있어서 국제자유노련은 자신이 포위되어
있음을 지속적으로 깨달아 왔다. 그 기구가 다자간 투자 협정에서 사회적인 조항을
제안하거나 협상하고 있는 동안, 사회 운동과 비정부기구의 네트워크는 다자간 투자
협정에 대항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간 대립을 이용해서) 그것을 파괴했다. 그리고
국제자유노련이 기존 국제 금융 기구들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는 동안, 다른
이들은 좀더 적합하고 민주적인 대안 기구로 기존 기구들을 넘어설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Held 1998)
그리하여 우리는 내가 '국제 노동진영과 노동자 국제주의의
절합 원칙'이라 부르고 싶은 것에 관한 주요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단지 조합 이데올로기(들)의 문제만도 아니고, (여성, 임시직 노동자,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노동자 일반과 임금 노동자 모두에 대한 제한적이고 가변적이며 심지어
쇠퇴하고 있는 조합의 대표성 문제만도 아니다. 이는 또한 심지어 유의미한 대의제-민주주의적
조직들일지라도 그것들이 지구화되고 네크워크화된 자본주의와 노동운동에 적절한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앞서 여러 번 제시했던 대로, 오늘날 (국내적 그리고 국제적으로)
운동에 적절한 형태는 네트워크, 합동 혹은 연합이다. 이러한 형태야말로 Enzensburger(1976)가
전자 매체에 대해 얘기했던 것처럼 '무용수처럼 자유롭고 축구 선수처럼 빈틈없고
게릴라처럼 신출귀몰할' 수 있는 형태이다. 하지만 전세계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점점 더 지구화되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자본주의에 대항한 유일한 방어기구인 대의제-민주주의적인
조직을 거부한다는 것은 미친 짓처럼 보일 것이다.
아마 해답은 바로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과 노동운동을, 국제적
노동진영과 노동자 국제주의를 구별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전자는 조직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으로, 후자는 네트워크에 의해 나아가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후에
언급될 노동과 지구화에 대한 다양한 회의를 검토해 보면, 이는 경험적인 사례로
보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국제 기구에 있어서, 이는
세 가지 단계를 함축할 것이다.
1. 그들이 노동자의 유일하거나 혹은 특권화된 대표자라는 관념을 버리는 것. 결국 이는 지나간 일국적인 산업자본주의 시기에 관련된 것이기에 하나의 감옥이기도 한 특권이다.
2. 네크워크와 네트워킹을 운동과 혁신의 원천으로 인정하는 것. 이는 노동자와 노동 관련 네트워크 혹은 비정부기구들(NGOs)이 ILO의 포럼을 포함하여 그들의 포럼에 참가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3. 새로운 국제주의는 우선 전자 매체를 기본 수단으로 하고
지구적 연대 문화를 중심 가치로 하는 의사소통 국제주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러한 재창조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은 내 생각에는 이전에
검토된 자료에 암시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들어 있다. 나머지는 네트워크들에 의해
진전되고 있거나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내부와 주변에 있는 네트워크들이 재-창조의 원천을
- 혹은 적어도 주된 원천을 - 제공하는 것처럼, 제도화된 국제적 노동진영 또한 ILO에
재-창조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고 제공해야 한다. 국제적 노동진영은 확실히 ILO를
방어 요새로 간주하기보다는 자본과 국가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시장과 국가의 이데올로기적·제도적
헤게모니에 대항한 영속적인 투쟁의 장소로 이해되는) 지구적 시민 사회를 다룰 수
있는 공적인 기반으로 간주해야 한다. 나는 관련된 모든 노동자의 불만의 표현들(여성의
표현, 환경적인 것, 중소기업 관련, 농업적인 것 등등)을 포함해야 할 필요성을 이미
제시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의 유엔 회의와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그러한 모델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의사소통의 파라미터: 파라미터들은 없다?
1999년 8월 한 주 정도 COL21에 참가한 경험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숫자에 있어서도 그랬고(등록 462, 거의 100에 달하는 소개/기고) 응답자들의 관심과
배경에 있어서도 그랬다. 나는 그 응답이 미국, 영국, 학계, 통상적인 온 라인 사용자
- 룬고 백인 남성이며 전문직 종사자이고 북구인 - 들에게 강하게 왜곡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8월 말에 4일간 뿌려진 48개의 기고문에 기반하여 재빨리 인상주의적으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드러난다. 즉, 43개는 자본주의 핵심국가, 주로는 영어
사용국, 대개는 북미에서 나왔고, 44개는 남성들이 쓴 것이며, 25개는 조합 활동가들이나
조합의 유급자들에게서 25개는 학계에서 나온 것이었다(마지막 둘은 종종 겹치는
카테고리이다). 12개는 전문 노동 NGOs에서 온 것이며, 16개는 집단 교섭에 주안점을
둔 것처럼 보였고, 26개는 국제적 노동 관련 이슈에 대한 것이었다. 연령과 민족
분포에 대해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참여를 정확히 주된 인물들에 국한된 것이라고 격하시키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그 행사의 근본적인 잠재력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그것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성격에 주목하고 싶다. 그것은 지구화라는 조건 하의 노동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학문적으로 자격이 있고/학계에 고용되어 있고 조합 지향적인/조합과 연결되어 있는 참가자들의 숫자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들, 자본주의 주변국에서 온 사람들, 영어 사용자가 아닌 사람들의 근소한 참여가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이것은 선거가 아니라, 토론이고, 더 나아가선 대화일 것이다. 우리는 (지구화가 앵글로 색슨 유형의 노동 관계 그리고 그것들의 유럽 혹은 국제적 투영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백인, 북구 출신, 영어 사용자, 친-노동 성향의 무수한 학계 인사들로 결론을 낼 수도 있지만, 독자들이 특정 기고문에 부여하는 중요도는 기고문의 대표성이 아니라 그것의 적절함에 대한 독자들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어느 한 날에 온 편지들 중에서 지구화 시대의 노동에 대한 대화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메시지를 발췌해 보고자 한다.
날짜: 1999년 8월 19일 (화) 10:09:46 + 0200
제목: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는 안부 인사
미시지: 1번
제 이름은 메데아 벤자민이고 인권에 대한 기업의 책임 집단,
[글로벌 익스체인지](Global Exchange)의 의장입니다. 저는 미국 초국적 기업과 그들의
해외 노동 관행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글로벌 익스체인지는 아시아에서
나이키가 행한 노동 학대에 대항한 운동의 선봉에 서온 집단 중 하나였고, 지금은
의류 기업인 GAP에 대항한 운동을 수행하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공장 노동자들에게
생활 임금을 지불하고 공장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를 허용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최근에 중국에 있는 미국 기업과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캠페인에 착수했습니다.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의류/신발 혹은 장난감 산업에서 노동자 권리에 관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는데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날짜: 1999년 8월 19일 (화) 10:31:57
제목: 소개
메시지: 5번
벤쿠버에서 안부인사 보냅니다. 제 이름은 리투 마힐입니다. 저는 제 부모님이 처음으로 캐나다 농업 노동자 조합을 조직한 때인 5살 때 조합 조직책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중 하나는 농장에서 딸기를 따고 농업 노동자인 척 하며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 이래로 그 운동에 몰두해 왔습니다. 지난해에는 캠퍼스에 있는 대학원생회의 지부로서 우리 대학 TA들을 CUPE Local 4163으로 조직하는 것을 돕기도 했습니다. 요새는 빅토리아 대학에서 공공행정에 대한 법학 및 석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위를 두 개 받기로 한 주된 동기는 노동 관계에 대해서 좀더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입니다. 운 좋게도 전 요새 오로지 노동 조합 쪽에 선 노동법만을 실행하는 벤쿠버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학위를 끝내길 바라고 있어서 법학 공부와 조직화된 노동에 대한 제 관심을 결합시킬 수 있는 논문/프로젝트 주제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흥미있는 토론을 기대하며.
날짜: 1999년 8월 19일 (화) 10:58:32
제목: 답변: 소개
메시지: 13번
모든 참석자들에게 인사 보냅니다. 저는 강영신입니다. 전
한국 서울에 있는 중앙대 사회학 교수이며, 개발 도상국 및 선진국의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에 대한 비교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동아시아에서 정치적 이행과
경제적 지구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변천하고 있는 노동자 정치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성과 노동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산업 사회학,
정치 사회학, 계급 분석을 가르칩니다. 정의와 평등을 위한 노동자 투쟁에 핵심이
될 "조직화된 노동 21"에 대한 전자 회의에 참가할 기회를 갖게 돼서 매우
기쁩니다. 미래를 위해 우리의 경험과 연구를 나눕시다.
IILS가 이 기고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포럼은 결국 IILS 자신과 ILO, 국제자유노련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처음 참여자들이 이 단체들이 보여주는 모습보다 잠재적으로 더 급진적으로
보인다면, 전자 포럼의 파라미터들은 학술적인 혹은 노동조합의 회의나 출판물보다
훨씬 침투력이 강할 것이다.
나는 메일링 리스트에 의해 전파되는 E-mail을 통해 진행되는
그와 같이 개방적인 전자회의가 과 통신 자료실에 올려놓아 온라인으로 접근가능한
기고문들과 더불어 국제노동관계보다는 국제 노동운동 지향적인 어떤 것을 창조하기
용이하게 하거나 촉진시키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왔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유명한 '우편 열차'의 전자적 등가물 속에 병렬적인 혹은 결과적인 사이트/회의를
창조할 가능성이다. 어떤 독자들이 떠올리는 것처럼, 레닌은 독일의 군사-산업-정치적
엘리트가 제공하는 이점을 이용하여 세계 1차대전 중에 스위스에서 러시아로 돌아갔다.
최근에 같은 방침이 서독의 오디오-비디오 매체를 사용하는 독일 반체제의사에 의해
동독의 검열을 뚫고 진의를 파악하는데 사용되었다. 사이버공간은 다른 매체보다
필연적으로 더 민주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하다.
어떤 국제노동진영 메일링 리스트나 사이트에서는 벌써 COL21의
존재를 알리고 그것에 대해 호평을 하거나 혹은 그들의 방문객에게 거기에 참여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예컨대 보다 더 운동에 초점을 둔
회의를 고무하기 위해 기고자/기고문들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국제노동운동을 지향하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에 관해서다. 아마도 참가자들을 병렬적인/더 최근의 사이트나
회의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COL21에 기고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자신만의
관심있는 e-mail주소의 데이타베이스를 만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보다 야심차게 현재 주변화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을 참여시킬 방법을 찾기 위한 데이타베이스까지도.
여기서 내 성찰의 기초는 국제적인 노동조합 웹사이트들과
자율적인 국제노동진영의 웹사이트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모종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관례적으로 전자적인 형태의 노동조합 게시판이거나 잡지이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토론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그 영역들을 대중으로부터 격리키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은 컴퓨터 네트웍과 같은 피드백은 제공하지 않고 마치 라디오 송신기처럼
다중에게 방송하려고 한다. 자율적인 웹사이트란 전문적인 노동 그룹이나 혹은 개인에
의해 운영되며, 직접적인 연대, 참여, 피드백을 고무하려는 웹사이트나 리스트를
의미한다. 어떤 사이트들은 잘 자리를 잡았다. (비록 자기중심적인 근본사회주의자들은
인터넷을 신이 준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마침내 그들의 유아론을 세계적인 규모로
실천하더라도) 대부분이 그 형태와 내용에서 편파적이지도 분파적이지도 않다. 비록
그 주제가 즉각적이고 극적인 문제나 캠페인에 경도되더라도 그 메일링 리스트 참가자들은
종종 토론을 한다. 웹사이트들에는 토론용 페이지가 표시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몇년 동안 토론된 주제 안에서도 그리고 토론자들의 사이에서도 COL21에서 이미 제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건드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