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조합원의 언어를 이해하는 길은?

― 설득하지말고 느끼는것

홍 은영(세기말 현장보고서팀, LAN)

1. 상징적 슬로건과 거짓말 사이에는

노조의 투쟁에서 채택되는 구호는 언제나 '이번만은 물러설 수 없다', '목숨을 건 싸움' 등

극단적인 상징 언어들이 선택된다. 이는 속내야 어쨌든 외부적으로는 '정리해고 철회'라는 선명한 구호를 단호하게 외쳐댄 98년 현대자동차 파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압축된 구호는 더 높은 호응, 강력한 집중, 더 많은 동원력을 유도하고자 한다.

그 속에서 지도부의 조직적인 통제력에 대한 합의와 동의가 이루어진다. 가능한 모든 복잡한 상황들은 구호 뒤에 감춰진다. 그런데 구호와 파업의 실제 경로가 반대되는 순간

평조합원들은 이 상징 언어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반응한다.

"단 한 명도 안 받아들인다 해놓고 우리를 기만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지도부는 정리해고 수용에 대한 모든 것을 이미 준비해왔던 거 같아요.

그런데 왜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을까요? 공개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제대로 이해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우리를 무시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를 속인 거예요."

파업공간의 구호가 평조합원에게는 현실이 되고 지도부에겐 상징이었다. 일사분란하게 외쳐지던 슬로건과 구호 이면에 판단과 전략의 차이가 숨어 있다 균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8월 19일 중재를 위해 현대자동차에 온 조성준 의원은 협상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1기 노사정위 경험을 봤을 때 이런 내용이 미리 언론보도에 나가면

현장의 문제가 야기되면서 오해를 빚고 협상 방해요소가 되어 와서,

좀더 기다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이 정도로 마칩니다."

지도부 역시 협상 내용을 집회에서 공개할 때에는 상징과 현실이 애매하게 결합된 수사를 구사했다. 그래서 평조합원들은 협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TV나 신문 등 제도언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집회에서 발표되는 협상 경과와 혼선을 빚으면서 평조합원들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평조합원들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2. 의외의 표현들...

노동운동 내부에서 이미 시효만료라고 치부되어온 격렬한 싸움, 지도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드러났던 평조합원들의 판단과 전술들은 공식 일정과는 다른 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이것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진정한 전복적 행위, 그 자체로 느껴야만 해독될 수 있는 정보였다.

기존의 소통회로가 더 이상 작동되기 어려운 지점에서 일어나는 싸움, 기존의 명령체계를 벗어나는 싸움, 이러한 싸움들이 무계획적인 돌발 행위나 개인적인 분풀이인지, 새로운 경험 속에서 파생된 전혀 다른 표현인지... 여기서 우리는 느낌과 설득의 경계에 선다.

"금일(7/16) 회사측은 협상을 거부하고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한다. 조합원은 휴가가지 말고 조합으로 모이자.

이제 두려울 게 뭐가 있나! 회사측은 우리를 보고 죽으라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 있나?

니 죽고 내죽고 같이 죽자 이놈들아! 오늘 방송에서 위원장의 눈물을 봤다.

왜 눈물 흘리며 그렇게 해야 하나? 그 눈물은 우리 조합원 전체의 피눈물이리라.

이젠 회사측에 협상을 요구할 필요도 없고 누가 죽느냐 끝까지 가보자.

조합원동지들! 3일간 휴무 잊어버리고 조합으로 모여 당당히 투쟁하자!

언제 올지 모를 공권력에 굳건히 지도부를 사수하자! 투---쟁----- 끝까지 투쟁하자.

7/16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조합원의 글

가자! 총파업이다. 고용안정 쟁취하러.....

회사측이 드디어 미친 개지랄을 틀고 정리해고 방침을 노동부에 신고했다.

이제 더 무얼 망설이랴. 더 이상 두려울게 없다.

회사 너희 자본가 놈들이 죽나, 우리 노동자가 죽나 한 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붙어보자.

시한파업으론 안된다!

자본가 놈들 정리해고 철회할 때까지 무기한 파업으로 끈질기게 몰아부치자

가자~~~총파업으로!!! 자본가 놈들 박살내러.....

6/29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

위원장님 힘내세요....

누가 뭐래도 조합원들이 있잖아요....

회사 이 개XX들

내 짤리면 그냥 안나간다~~~~~~~~~~~~~

공장 확!!! 불질러 버리자.~~~~~~~~~~~~~~

조반장과 사무실 개XX들, 그리고 쥐XX같은 조합원들은 이거 끝나고

......반드시 응분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접어두자.

이런 놈들 먼저 정리해고 시키자.

씨X놈들 더러운 자본가 회사

위원장님께 힘내라고 꼭 전해 주세요.

투~~~~~쟁~~~~~~~~~~~~~~~~~

7/17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

만약에 공권력이 투입된다면 조합의 지침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비폭력 투쟁...그 순간에 날아갑니다.

위원장님 힘드시겠지만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겠습니다.

회사를 완전히 박살내겠습니다.

같이 망하는 거죠.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8/10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

방금 연합통신을 읽었다.

안 받으면 무호라니!!!!!!!!!!!

그럼 현자 노조는 대만족해 압가의 웃음이 넘치며 기다린다는 말인가!!!

잠시 후 정몽규씨가 나타나겠군!

그리구 못이기는 척 하면서 받아들이려나?

노무현씨는 달래는 데 정신없겠군

씨X 이거 거꾸로 된거 아냐!!!!!!!

한 명이 해고 되는 것과 천명이 해고 되는 것과의 차이는!!!!!

제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 시큼하고 구역질나고 매스꺼운 테이블을 차고 나와 생동감이 넘치는 밖으로 나오세요.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부담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 타협이 늦어질수록 불리한 자는 따로로 있으니까요!!!!!

급한놈이 우물파는 법입니다.

니 결정은 최후에 하는 결정이지 싸워보지도 않는 지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만 가도 더 좋은 조건이 나옵니다.

재벌이 인심쓰는 듯한 역겨운 그리고 정부의 공인양 떠드는 이 그림은 지금 선택할 것이 아닙니다.

디제이가 공권력 투입하려면 제2의 건국, 대화합, 노사정 다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자 노조님 이정도면 되었다. 싶을 때 다시 한 번 의심하는 그리구 결정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쉬운 놈은 따로 있습니다.

기다리는 지헤도...

기대하겠습니다. 테이블이 부서지도록 차주세요.

8/22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조합원랂 글

졌다. 우린 졌다. 분명히 우린 졌다. 우린 이용만 당했다. 얻은게 없다. 한달 넘게 철야 농성을 해온게 이것이란 말인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결코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배신감만이 가득차 있다. 노동운동!!!!!!!!!!이제 부터는 끊는다. 가치를 잃어렸다.

위원장!!! 잘 먹고 잘 살아라.~~~~~~~~~~~~~난 공권력에 짓밟혀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믿었는데....이제 부터는 나를 위해 살아가야 겠다. 정의고 의리고 다~~~~필요없다. 오직 나만을 위하여..... 이글이 내 마지막 글이다. 집행부에 용기도 절망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냥 간다. 안녕!

8/23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

답답하다. 가슴이 답답하다....밑에 글 쓰신 분 심정 나와 같다. 300명 정리해고 합의라니... 이 무슨 개풀뜯어 먹고 트림하는 소리란 말인가....한달...긴 시간을 천막 생활을 해가며....집행부는 다 한사람의 정리해고도 허용할 수 없다고 하더니... 이번에 정리해고 합의된 300명은 자동차 조합원이 아님니까?

위원장님께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할려고 조합원들에게 집회를 하자고 했습니까? 합의돼서 해고되는 조합원은 무슨 죄입니까? 참 미치겠군요...이래선 안됩니다.. 정말이지 이래서는 안되요...에이 개 X같은 세상...이제 누가 노동조합을 밑고 따르려나.....

....... ..... .... ....

8/23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

3. 침묵과 소음에 귀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집회에서의 열광, 위원장에 대한 연호, 우뢰와 같은 박수, 힘찬 팔 흔들기... 이것은 명확히 지도부가 해석할 수 있는 그리고 지도부가 좋아하는 표현이었다. 나는 이 싸움을 하겠다는 표현, 나와 그대는 하나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매끄럽지 못한 문제제기, 싸늘한 시선, 얼굴 돌리기, 의기소침, 침묵, 내부로의 침잠, 급기야 집회나 파업에 안나오기... 이러한 것들이 표현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배적인 의사소통 이론에서는 침묵과 소음을- 찡그림과 눈빛, 동작 같은 비언어적 표현들, 웅얼거림들은 비트화되지 않는 소음이다 - 의사소통의 방해요소로 본다. 하지만 오히려 침묵과 소음이 그 의사소통 회로의 성격과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역설적인 의사소통 아닐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나온 선생과 아이의 경우를 잠시 보면,

선생은 앞에 불려나온 어린 학생이 침묵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아마도 그는 그 침묵에 선생에 대한 거부가 들어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던 게다. 끝까지 그는 "예"라고, 학생이 스스로 자기 행동을 부정하는 말을 하게 몰아댄다. 그 선생은 침묵 속에 담겨있는 거부의 표현을 읽어낸 것이다. 마침내 그는 침묵 속에 담긴 부정을 '예'라는 긍정의 표현으로 변환시킨다. 심지어 임기응변의 거짓말 혹은 강요된 대답일지라도... 침묵을, 그 침묵이 발산하는 위험성을, 침묵의 표현을 수긍의 언어로 거세시키고 순화시켜야 했다. 교실이란 공간 속의 권력관계가 의사소통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말로 하는 것도 표현이고 글로 쓰는 것도 표현이다. 얼굴을 돌리는 것, 인상을 찡그리는 것, 침묵하는 것, 분노하는 눈빛, 거부의 몸짓, 심지어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까지 모든 것이 다 표현이다. 그런데, 파업공간에서 연단위의 발언, 유인물과 같은 말과 글은 특권화된 표현으로 소통된다. 의식, 무의식적으로 학습받고 교육받은 언어들 외에, 웅얼거림이나 분명하지 않은 말들은 철저하게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며 명확하지 않기에 끊어져버리고 삭제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거부의 의사로 전환될 위험이 있을 땐 더욱 그러하다. 얼굴돌리기, 집회 안나가기, 위원장 앞에서 무표정하기, 지도부의 지침을 벗어나는 행동 등은 거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무시한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해석'당하고' 있었다. 집회에 안나오는 조합원은 수동적인 대중으로, 지도부의 의사에 잘 따르지 않는 행동은 단결을 해치는 행동으로, 공장 내에서 관리자와의 육체적인 충돌은 개인적인 분노를 난발하는 우발적인 폭행으로 해석당하고 있었다. 이런 표현방식들, 비언어적 표현들, 그 몸의 언어들은 무시되거나 왜곡된다. 혹시 고려되더라도 소극적이라 치부되었다.

분할선은 발언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 혹은 표현하는 것과 표현하지 않는 것 사이에 있었던 게 아니다. 누구나 표현하고자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한다. 존재는 그 자체 표현으로 충만하다. 예를 들어보면, 말로 '그건 아니야'라고 표현되어야 할 어떤 느낌이 말이 안되겠다 싶을 때에는 싸늘하게 얼굴을 돌리는 침묵으로 혹은 격한 순간에는 싸움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그것은 소통 회로에 진입을 금지당한다.

어떤 표현이 소통되는가?에는 분명히 권력이 작동한다. 권력은 느낌보다 규범화된 명백한 기호를 선호한다. 그러나 평조합원들의 표현은 정리된 언어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말없는 몸의 언어, 타들어가는 담배를 바라보는 표정과 눈빛, 아이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묻어나오는 신체의 언어는 느끼지도 경청되지도 않는다. 몸의 언어를 느끼지 못하는 권력의 소통행위는 진정한 우려와 촉구, 비판의 목소리,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걸러지지 않은 의사 개진 등을 집행부에 대한 불신과 분열 행위로 규정한다. 표현은 유예되고 공적인 공간에서 밀려나온 의견들은 술자리나 사석 등에서만 맴돈다.

이런 낮은 목소리, 때로는 열에 들떠서 때로는 강렬하게 자신을 분출하고 표현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평조합원들의 욕망은 어떤 경우에라도 억압되거나 배제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파업대오에 대한 균열이 아니라 평조합원들의 독특한 방식, 은밀한 표현이다. 그 속에 감추어진 의미와 느낌을 읽을 수 있을 때 폐쇄되었던 소통회로는 다시 열려 복원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