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평조합원의 언어, 지도부의 언어

임 인애 (세기말 현장보고서팀, LAN)

98년 현대자동차 파업공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의사소통 공간이었다. 그들은 36일간을 온통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움직였다. 의사소통 단위도 아주 다양했다. 비대위, 대소위원, 사수대, 문선대, 선거구 별 텐트, 가족대책위, 현장 조직별로 구성된 논의체계, 오가며 부딪히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 규찰을 서며 나누는 소식 등등이 서로 포개지고 엇갈렸다. 여기에 농성 텐트마다 설치해 놓은 테레비젼에서 나오는 공중파 방송의 파업소식까지 합하면 그들이 정보를 수용하고 전달하고 논의하는 창구는 사람에 따라서는 참으로 다양했다.

이**라는 사람은 사수대이면서 2공장 소속이고 a라는 현장 조직에 있으면서 대의원이었다. 그러면 그는 사수대 간담회나 대의원 간담회를 통하여 비대위의 일정을 먼저 전달받고, 이것을 자신이 속한 2공장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고, 또한 자신이 속한 현장조직과 토론해야 했다. 게다가 시시각각 보도되는 뉴스내용과도 비교하면서 자신의 정보를 점검해야 했다. 그가 자주 얘기하는 소모임이 있다면 또 그 단위와도 뭔가를 논해야 했다.

문선대 강**도 마찬가지다. 그가 대의원이기까지 하다면 그가 정보를 접하는 체계는 엄청 복잡하다. 그리고 그가 관계맺는 상황은 더더욱 그렇다. 가대위 문화 프로그램도 함께 만들어야 하며 텐트 순회집회도 가져야 하고 위원장의 농성장 순회에도 결합해야 하는 등 수없이 많은 단위와 교감할 수밖에 없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에 평균 2번 잡히는 전체 집회에서 총괄되고 비대위 속보라는 유인물을 통해서 배포되었다. 그리고 가대위와 현장조직들은 집행부와는 별도로 유인물을 발행하였다.

이 유인물들은 노조 cug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다. 굴둑에 올라가 있던 전직 위원장들은 핸드폰으로 현장과 정치권이나 상급단체의 동향과 정보들을 수시로 입수하면서 무전기를 통하여 집회때마다 메시지를 보냈다. 노조 영상패는 그 싸움을 기록하기 위하여 파업내내 촬영을 하였고, 회사 관리자들의 관제데모와 관리자들이 만들어준 파업불참자와 조반장들의 술자리나 도박판을 촬영하여 즉석에서 편집하여 공개했다. 회사의 파업파괴를 위한 음성적인 구도를 적절한 시기에 폭로하는 현장언론의 기동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굴둑에 비디오 카메라를 올려보내 전직 위원장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고공농성 장면을 기록했고, 그것을 노조 앞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독특한 역할을 하는 영상, 성능이 좋은 무전기들, 상용화 된 핸드폰, 컴퓨터 통신, 유인물, 집회... 정말 다양한 매체들이 활용되었다. 이것은 파업에 대한 정보들을 훨씬 빨리 유통시켰다. 그러나 그런 매체들을 통하여 흐르는 정보의 성격은 무엇이었을까? 공적인 영역에서의 의사소통 체계 또한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과연 그속에서 수평적 논의, 자유로운 소통이 얼마나 이루어 졌는가?

협상과 집회, 유인물, 중앙비대위 속보가 올라오는 cug, 문선대, 가족대책위, 식당아줌마들의 행진, 사수대의 움직임, 지도부와 현장조직대표들의 발언, 텐트 조합원들의 난상토론, 본관 프레스 센타 기자들의 보도내용... 이런 것들이 겉으로 드러나고 언어로 표현되는 이 파업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그러나 이 정보만으로 파업공간이 전부 설명되지 않았다. 공식적인 소통체계나 매체 속의 정보는 비공식적인 소통 공간에서 드러나는 표현들과 너무도 달랐다. 보이지 않는 곳의 움직임, 말로 표현되지 않는 무의식, 또다른 몸의 언어, 비공식 접촉, 각 단위의 의견조율과정.. 거대담론의 듬성듬성한 그물망 너머로 빠져나간 조각들이 곳곳에 떠다니고 있었다. 이런 조각들을 퍼즐처럼 끼워 맞춰야만 비로소 이 파업의 질적 특성들이 온전히 드러날 것 같았다.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98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7,8월은 참으로 기묘했다. 지리한 장마는 농성 텐트를 온통 축축하고 눅눅하게 휘감았으며 간간히 해가 드러날 때 조차도 습기는 마르지 않았다. 가동을 멈춘 공장의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여름 내내 온몸에 달라붙는 끈적끈적한 무더위.. 정말 숨막히는 날씨였다. 그러나 날씨보다 더욱 숨막히는건 그 공간에 분명히 흐르고 있었으나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었다. 그것은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그 난해한 대열에 함께 실려가는 우리 세기말 현장보고서팀은 가능한 한 그 숨막히는 다양한 생각의 갈래들을 하나하나 그대로 추적하고자 했다. 현대자동차 조합원이 아닌 우리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견을 가진 그들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지 꼼꼼하게 주목할려고 했다. 그들은 가끔 표현하기도 했고 봉합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들을 접어놓고 공식적인 지침을 이탈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불쑥 돌출적인 행위들이 있었지만 파업 공간의 지배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쪽으로 스스로를 조정했다.

98년 8월 10일 오전 9시...

1공장에서 관리자들이 기계를 돌리려고 현장으로 들어왔다는 무전이 1지대장에게 날라왔다.

무전기 음향을 곁에서 들은 사수대들은 엉거주춤 1공장쪽으로

가지도 말지도 못하는 상태로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여기는 1지대.. 독사 .. 빨리 상황 판단하고.. 지령 내리라.."

지대장이 독사에게 응답인지 독촉인지 무전을 날린 얼마후, 지침이 내려왔는지 말았는지 사수대들은 1공장으로 달려갔고 한바탕 살벌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사수대들은 소리쳤다.

"나가! 맞기 싫으면 나가!"

"안나가면 다 밀어버린다."

"우리는 목숨을 걸었어! 그거 알아, 이 새끼들아?"

"죽기 싫으면 나가면 될거 아니야!"

서로 엉겨붓고 또한 누군가가 서로 말리면서

관리자인지 구사대인지는 공장 밖으로 밀려나고..

"자...사수대 앉읍시다!" "앉아! 앉아!..."

"명령에 따릅시다. 통제에 좀 따라주세요!"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분을 삭히지 못한 젊은 사수대들은 줄을 맞추어 앉기 시작했다.

지도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솔직하게 입장을 밝혔다.

"사수대는 철수 하십시오! 사수대는 필요에 의해서

오늘 가동하는 라인에 대해서 생산저지투쟁을 하면됩니다.

불필요하게 우리가 폭행을 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수대들의 눈빛은 터질 것 같았다.

"우리도 많이 맞았습니다. 밖에서 폭행당한 조합원이 한두건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비폭력하고 넘어가야 됩니까?"

"아니... 밖에서 맞은 것이 우리가 누구한테 맞은건지 심증은 가는데 물증

은 없고 몽따쥬도 안되고 검찰 의뢰 조사도 안될 정도예요. 그런데 그걸

갖고 여기 빤히 보는데서 관리자들을 어떻게 칠 수 있습니까?"

"기계를 돌리겠다고 들어온 놈들 아닙니까?

확실히 몰아내야 할거 아닙니까?"

"우리 사수대들 사실 격분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현장에 들어 왔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

다. 그래야 2,3,4공장에서도 이런일 안생길꺼 아닙니까?"

그때 또다시 반대편에서 조금 직책이 높은 관리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보십시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저러지 않습니까?"

"우리가 있는데도 저모양인데, 우리 가고나면 어찌될지 무슨짓을 할지

도대체 어떻게 할겁니까?" "그래도 제발 지도부 통제에 좀 따라주세요!"

"여기서 폭력사태가 생기면 안됩니다. 통제에 따라 주세요."

그러나 사수대들은 통제에 따르지 않고 관리자들과 다시 마주섰다.

"빨리가....여기가 어디라고 삐질삐질 내려오냐" "여기가 사무실이냐?"

"직책이 좇도 아닌것들이 과잉충성 한다고 버티고 있다 맞는거

아무도 책임 못진다."

"빨리 눈에서 사그라져..." "빨 리가!" "개새끼들.. 현장에서 빨리나가!"

이번에는 관리자도 사수대도 자제를 해서인지 몸싸움은 없었다. 또한번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폭발할수도 접을수도 없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느라

지대장과 사수대의 표정은 온통 일그러진다. 퍼런 불꽃이 튀는 눈동자엔

아주 잠깐 물기까지 베어나왔다. 그래도 어디선가는 한두명 단위로 서로

엉겨붙고, 엉기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말리고... 그것도 잠시, 단호하게 판

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통제..." "철수..." "통제.." "철수..."

"위원장 지침이다. 빨리 나가라 사수대..." "사수대! 빨리 나가라..."

이번에는 사수대들이 공장밖으로 밀려났다.

잘려나가는 순간까지 뭔가 참아야하는 이유를 반쯤은 이해하고 반쯤은

납득하지 못한채 사수대들은 막사로 되돌아 갔다.

그렇게 그날 아침 기계는 돌아가지 않았다.

30분 동안의 상황이었다.

이것이 1998년 현대자동차 파업현장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싸움중의 하나이다.

어쨌든 별다른 폭력사태 없이 생산저지투쟁을 한것이다.

이제 열받아서 온몸 던져 싸우고 느낌따라 움직이고 감정대로 표현하는 것은

절대 투쟁이라 하지 않는다. 지도부가 인위적으로 폭력과 비폭력의 기조를 분리하고,

폭발하는 에너지를 통제할 때, 조합원들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표현은 억압되고, 계산된 전술과 일정을 벗어나는 것은 금기 사항이 된다. 궁극적으로 투쟁의 자발성과 창조성은 위축되고 오직 지배적인 전술 하나만 선택될 뿐이다. 전술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은 이미 봉쇄된다.

그날 아침 이 애매한 싸움을 치룬 사수대들 중 일부는 정리해고 되었고

일부는 무급휴직자가 되었고 아주 일부는 지금 일하고 있다.

1998년 8월 11일 2지대 어느 사수대와의 인터뷰에서..

"공식단위의 조합에서 어떠한 폭력도 안된다라는 말을 할 때 아.. 이거는 정말로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거는 폭력이 아니다. 최소한의 먹고사는 먹고 사는 걸 저놈들이 끊어 없앤건데..그없앤것에 대한 대응을 초인적인 사람이라면 몰라, 그렇게 초인답게 정말 냉정하게 냉철하게 대응을 하겠지요. 그렇지만 평범한 조합원들은 초인적일 수 없고, 뭔가 부처님 같은 아량과 자비를 베풀수 없습니다. 이미 내가 먹고사는 구조가 깨지고 내 가정의 균형이 완전 박살났는데, 이런 지경에 나타나는 행동들을 파괴라 하고 폭력이라 노동조합에서 규정짓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우리를 또한번 죽이고 슬프게 만드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초창기에 발생했던 조반장 책상 다 부수고 불태우고 관리자들 일부 얻어맞고 컴퓨터, 임펙트 작살나고.. 전공장에서 다 일어났쟎아요. 이런 현상이.. 저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저쪽에서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데, 저는 그것을 학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학살... 이 엄청난 학살을 저질러고 나서 이 정도의 대가 밖에 치르지 않았다는 건, 저놈들이 그저 먹은 거예요."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고 3일 정도 지나고 사수대 막사로 결합한 조합원들이 많은데요... 이 막사에 오기까지 사흘, 그 사흘동안 정말 이루 말할수 없는 고민으로 술로 밤을 지새고 결단을 내린 겁니다. 그렇게 사수대를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사수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도 그 고통은 잘 다스려지지 않고, 단지 같이 지내는 사

람들에 의해서 제되고 조합에 의해서 통제되는 상태이지, 마음을 진정하거나 감정을 추스리거나 냉정한 이성을 되찾거나 그런 상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루 아침에 순식간에 자신이 폐품처리 당했는데, 회사가 이미 정리해고를 단행했는데 협상을 통해서 철회시킬거라는 기대도 안가지고 있어요, 모두들! 회사가 협상을 통해 철회시킬거

면 미쳤다고 던집니까... 이런 면에서 지도부와 정리해고 당한 현장조합원들 간의 견해의 차이나 이견의 폭은 크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래요. 농성대오가 아무리 크다한들 무장을 하지 않을 경우 진압은 순간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진압은 어차피 당하게 되있는데 지금 비무장 상태의 비폭력 평화투쟁이라는 이 기조를 계속 유지했을 경우 이 농성대오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나.. 단지 한달여 기간 철야농성을 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거 외에는 남을게 없다는 것이죠. 당한 만큼 보여주자는 거죠. 지금 현장의 정서는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그런 속내예요. 그러나 지도부는 그렇게 한다면 모두가 절단난 상태에서 이후를 기약할 수없다는 생각이고 이후의 노조운동이나 노동운동이 더 어려워 질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이 극한으로 가는걸 구조적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봐요."

"뭔가 자본이 멈춘다, 이윤이 창출되는 구조를 틀어막아 보자.. 그래서 가장 미약한 방법 하나를 제가 이 집행부에 제기했던 적이 있어 요. 우리가 10년 세월 20년 세월 또한 5년 세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무엇으로 먹고 살았냐.... 우리가 먹고 살아왔던 도구가 있다. 도구... 일해오는 시간 내내 우리 손을 떠나지 않았던 공구 말입니다. 이공구는 제조업에서는 기초입니다. 자본이 돌아가는 가창 기초적 단위라 말입니다. 이거를 싹 다 거두자.그렇게거둔 공구를 저들이 보는 앞에서 불지르자.. 아니면 에러를 발생시켜 반납하자. 이 공구만 하더라도 한순간에 조달안되는 수급불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어요. 모두 수입품에다가 아주 작은 것이

지만 3백만원 4백만원 하는 것도 있어요. 그러면 현대자본은 가장 기초적으로 안돌아가게 되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우리의 분노를 1차적으로 확인시켜줄때만이 정리해고에 대한 생각을 좀 선회할까말까 하겠죠. 그래도 강행한다면 또 다른 강도 높은 상황을 만들자는 거예요. 전술의 강도 더 높이자. 그 다음은 프레스다. 저들이 더 이상 정리해고는 할게 못되는구나..라는 지점까지 몰아부치려면 이렇게 가야한다는게 현장에서 내리는 판단이예요. 이 정도가 아니면 우리를 떡주무르듯 갖고 놀다 이미 법제화된 정리해고를 현대자동차에서 무슨수를 쓰서라도 관철시킬거라는 거죠. 진짜 이후를 생각한다면 지금 할 수 있는 확실한 싸움을 해야한다는 현장의 생각과 또다른 협상전술과 안정적 투쟁을 통해 차근차근 현장의 미래를 준비하자는 지도부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셈이죠. 그러나 싸움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견을 드러내놓고 충돌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봐야죠... 아마 이후...공권력에 대한 대응에서 좀 분명하게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그래서 제가 지도부에 어떤 방법을 제기했던 적이 있어요. 이것을 저들이 보는 앞에서 불지르자.. 아니면 에러를 발생시켜 반납하자. 그러면 공장은 안 돌아간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분노를 1차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자. 그래도 안 되면 전술의 강도 더 높이자. 그 다음은 프레스다. 저들이 더 이상 정리해고란 더 이상 할게 못되는구나.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몰아 부쳐야 한다. 이것이 현장에서 내린 전술이고 판단이예요. 진짜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 끝장내는 싸움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도부는 안정적인 협상전술을 통해 현장의 미래를 준비하자 거지요. 이렇게 달라요."

1998년 8월 14일 평조합원 텐트에서...

"지도부가 공장 내려 앉히라면 과감히 박살내겠습니다."

"굳이 잘라내겠다면 좋습니다. 같이 죽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희망퇴직하고 벌써 떠났지 왜 이 고생하겠습니까...

돈 몇푼 중요할수도 있어요. 그러나 긴 인생을 사는데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어요.

절대 그냥 갈수는 없다는 겁니다."

1998년 8월 18일 저녁 집회에서...

"위원장으로서 간절히 호소합니다. 이것만은 지켜주십시오. 우리가 만든 생산차에 손대지 맙시다. 기계에 손대지 맙시다. 파괴하지 말고 불지르지 맙시다. 간절히 호소합니다..."

"지도부는 생명이다. 끝까지 사수하자!"

같이 죽자와 함께 살자... 대책있는 정리해고냐 공권력과의 결전이냐... 끝장을 보겠다는 싸움이냐 내일을 기약하는 끝없는 투쟁이냐.... 여기서 어떤 표현은 정보가 되고 어떤 표현은 누락되었다. 어떤 전술이 채택되고 어떤 전술이 배제되는가를 놓고 공식적인 흐름과 비공식적인 욕망들은 끊임없이 어긋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제 2의 그물망이 또 있었다.

첫 번째 그물망을 빠져나와 떠다니는 조각들마저 정교하게 포착하고 엮어나가는 거대한 시스템... 그것은 8월 17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노사정위원회, 정부 중재단과 국회의원, 노동부 장관까지 불철주야 등장시키는 화려한 스펙타클을 8월 24일 새벽까지 숨가쁘게 연출한다. 그것은 한편의 정치 드라마였다. 8월 20일 밤 9시 50분 김원기 의원과 함께 나타난 민주노총 이갑용 위원장마저 본관 협상장 취재 카메라 앞에서는 산업평화를 위한 애매한 단역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그 시간 정문앞 규찰을 서고있던 조합원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에 하얀 비닐우의를 들쳐입고 물젖은 쇠파이프를 고쳐잡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하나의 무대장치에 불과했고 그들이 쌓아놓은 바리케이트, 심지어 공장을 둘러싼 공권력조차 그 드라마를 위한 소도구처럼 보였다. 파업공간은 무대셋트 였다. 그 무대에서 노무현 의원의 활약은 눈부시게 신출귀몰했으며 이기호 장관의 중후한 캐릭터, 정몽규 회장의 당당한 표정은 무수한 조역들 속에서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재편되었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비대위 협상팀의 캐릭터를 분석한다는 건 아주 난해한 일이었다. 이 이상한 시스템을 빠져나가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아주 구체적이고 촘촘한 그물망이었다.

1998년 8월 20일 한국경제 신문 기사 중에서...

.... 이에 따라 여당중재단은 20일 오전부터 노사대표를 만나는 동시에 노조내 사조직 지도부를 만나 막판 중재를 시도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8월 21일 오후 6시. 3지대 사수대 텐트에서...

"결국 받아들일 거면서 왜 30일 넘게 조합원들 잡아놓고 관들어라.. 규찰서라.. 에이 나쁜 놈들...활동가라는 놈들도 다 똑 같아요. 누가 뭐라하던 할거는 하고 터질건 터지야 될거 아니요? 가는데, 어차피 갈껀데... 아무것도 뭐도 없어요. 활동가도 없고... 다 끝난거라... 무식하고 배운 것 없고 아무것도 못하는 놈들은 대가리 처박고 시키는대로 해야 된다 이거 아니요. 지금 돌아가고 있는 판이... "

8월 22일 오전 10시 45분, 본관 프레스 센터 중재단 대표 노무현의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측에서 회사측에 제시하는 어떤 선물이 있습니까?"

"그 점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노동조합이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과정이 궁금한데요.. "

"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갑자기 노무현의원은 재미있게 웃었다.

곧 맥락이 어긋난 질문과 대답이었다는 걸 서로 눈치 채는 것 같았고

다시 질문이 들어갔다.

" 노조를 설득하는 과정이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뱫은 침묵이 흘렀고 중재단 일행 중 누군가가 응수했다.

"그거는 노무현 부총재를 비롯한 우리 중재단 구성원들이 평소에 노동조합하고 맺고 있는 친분관계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알게 모르게 공식 비공식 접촉을 통해서 그렇게... 어... 그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라고 ..." 그러자 노무현 의원이 곧 그 답변을 수정하였다.

"정리해고 수용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 아닌가.. 그러나 노동조합으로서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서 쉽게 수용해내기 어려웠던 점이고, 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쟁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마찰을 조금 빚어오다가 이제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이라는 현대자동차에서 정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한국노총이든 민노총이든 어떤 노동조직도 이번 타협을 계기로 노선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제일 먼저 십자가를 질 거냐...

전체 노동계로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려있는데, 누가 제일 먼저 총대를 맬 거냐..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말하길 그 총대를 맬거냐하는 것인데, 결국 가장 용기있는 지도자만이 그 십자가를 맬 수 있는 것 아니냐...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그.. 노조지도자..! 현대자동차 위원장은 가장 용기 있는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흔히들 노조의 대의를 팔아먹었다, 당신은 양보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이것을 정말 정직하고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이 결단... 나는 그래서 책임있는 지도자의 결단이라고 봅니다. 그 결단을 우리 중재단이 옆에서 돕고 책임을 분산하고 그 결단의 정당성, 불가피성에 관한 상징적 뒷받침들을 하고 있는 겁니다... 협상의 구체적 부분은 너무 자세하게 물으면 지금으로서는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1998년 8월 22일 밤 8시 30분 조합원 텐트에서...

"이번에 내려온 노무현씨라든지 정부 중재단 전부 짜고 치는 화투판이지요, 뭐. 거기에 노동조합이 말려들어갔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파멸로 가는 문을 열지 않았나... 지도부의 생각들 참 겁나네요, 판도라 상자 같이..."

1998년 8월 23일 오후 4시 태화강 집회에서 문성현(현 금속연맹 위원장)의 연설중에서...

"열흘이 지났습니다. 20일이 지났습니다. 한달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부에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 땅에 누가 반정부 집단인지 확인되었습니다. 장관이 오고 정당이 오고 정부중재단이 와서 저희 노동조합의 처절하고 애끓는 투쟁에 동조, 공감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재안을 냈습니다."

8월 23일 밤 11시 조합원 텐트에서...

"정리해고 투쟁하면서 정부 중재안을 불렀다는 거는 집행부가 우리를 기만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거죠. 집행부 의도를 몰랐던 우리도 무지했던 거예요."

"저그끼리 다 짜고 지랄병하고 저그 마음대로 법제화시키고 도장찍고."

8월 24일 새벽 2시 10분 조합원 텐트에서....

"어차피 정리해고 수용에 모든 건 끝난 거라..."

"지금 같은 이런 협상할 거 같으면 여기까지 올 필요 없었지..."

"그래도 기다려 봅시다."

"이미 다 끝났어요."

"지금 본관에 모인게 대가리 처박고 돌파구를 찾는게 아니라고 봐요.

다 조합원 눈치보는 작전이라 작전... 어떻게 이렇게 조합원들 마음을 몰라..."

"위원장 갈길을 간다했지? 어느 길이 갈 길인지 말 길인지... 해뜨면 다 밝혀질 건데..."

1998년 8월 24일 새벽 2시 47분 노조 협상팀 본관을 나오며...

"아직 타결 안됐습니다. 자... 기자분들 비껴주세요. 아직 타결 안됐습니다."

1998년 8월 24일 새벽 4시 50분 프레스센타, 조성준 의원의 발언중에서...

"조금 있으면 노사당정이 협상타결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 오늘이 김대중 대통령 취임 꼭 6개월째 되는 날입니다. 신노사관계의 시작, 좋은 시작이라 봅니다."

그리고 2시간 후 이기호 장관의 언급처럼 "산고에 산고를 거듭해 탄생한 신노사 관계의 옥동자"를 축하하는 그림이 마지막으로 생중계되면서 98년 현자 파업은 끝이난다.

현대자동차라는 데를 들어와서 처음으로 노동하지 않고 보낸 36일이라는 그 긴 시간 내내 "정리해고 철회없이 한발작도 못나간다"고 외쳐댔던 평조합원이나 가족들은 등장시점을 놓쳐버린 배우들처럼 허탈하게 공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1998년 8월 24일 정오 파업투쟁의 끝...

정문 경비들은 파업 농성장을 나가는 오토바이 의자덮개를 열고 검색을 시작했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검문을 당한 조합원들은 정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36일간의 자유통행은 여지없이 끝나버린 것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배역이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 처럼... 그렇게 서둘러 농성장을 비워 주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람들의 표면적인 일상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98년 현대자동차 파업투쟁은 하나의 사건이었고, 무엇보다 공권력의 살상을 막은 아름다운 투쟁으로 마무리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비판하고 있지만, 98년 여름의 퍼즐맞추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주 작은 하나만 예를 든다면, 8월 24일 새벽 2시 35분에서 47분까지 노사정(이기호 장관/정몽규회장/김광식위원장 일행)모두가 순차적으로 협상장을 나오며 불과 3시간 후에 발표할 타결선언을 왜 극구 부인하는 과장된 제스츄어를 보였는지... 3시간 동안 생길 수 있는 어떤 현실적 변수가 염두에 계산되었기에, 막판에 와서 그렇게 매끄럽지 못한 거짓말을 연출했는지... 협상에 임한 노사정 3자가 공통적으로 막아야 했고 두려워 했던 상황은 무엇이고, 그들에게 어디까지 감지되었는지.. 불과 3시간! 노사정 3자가 두려워 했던 예기치 못한 현실적 변수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미 그 시간 농성장은 반쯤 비어있었다. 불의의 사고도 없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꼼꼼이 뜯어보면 협상전술의 핵심이 보인다. 그런 퍼즐 조각들이 98년 현대자동차 파업투쟁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서로 다른 견해, 서로 다른 표현, 서로 다른 언어들은 끝까지 소통되지 않았고, 어떤 전술은 체택되고 어떤 전술은 배제되었다. 어떤 정보는 공개 되었지만 어떤 정보는 통제되었다. 지도부의 언어와 평조합원의 언어는 분명히 양극단을 이루었지만 표현은 자제되었다. 하나의 공간에 두 개의 코드가 있었지만 결코 대립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98년 현대자동차 파업투쟁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모했던 대형 이벤트였다. 지도부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던 3개 현장조직은 물론 대소위원, 중간 활동가 평조합원들 까지.. 모두가 위계질서와 운동의 대의라는 명분, 현실적 한계라는 핑계를 대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동의를 하고 암묵적인 공조체계를 유지했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어느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지도부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던 3개 현장조직은 물론 대소위원, 중간 활동가 평조합원들 까지.. 모두가 위계질서와 운동의 대의라는 명분, 현실적 한계라는 핑계를 대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동의를 하고 암묵적인 공조체계를 유지했고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없었다. 어느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소통부재의 현장, 세기말 한국 노동운동의 맨 얼굴이 거기에 있다. 이제 누군가 그 얼굴과 정직하게 마주서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누군가... 그 2중의 그물망으로 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행위와 사고들 또한 끊임없이 추적해야 한다. 그기까지가 98년 현자 파업투쟁의 퍼즐 맞추기가 완료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을 희망이라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파업공간의 권력관계에서 배제된 행위, 누락된 정보, 결코 드러날 수 없었던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두얼굴의 파업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의미심장한 물음은 던졌고, 그 물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투쟁의 핵심인 정리해고 수용여부나 중재안에 대한 협상태도, 파업전술, 싸움기조에 대한 실제적인 결정권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파업이란 긴박한 상황에서 지도부의 통제권은 무한대로 허용될 것인가? 또한 그것은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어떻게 대립하는가? 일사분란한 명령체계에 대한 심리적 강박은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는가? 비대위와 위원장에게 위임되어 있는 대표권은 영역은 어디까지 인가? 협상은 왜 비밀인가? 협상테이블 바깥에서 이루어진 지도부의 비공식 접촉 내용은 왜 공개되지 않는가? 지도부의 언어나 평조합원의 언어가 서로 다를 때,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그것을 통합시켜줄 것인가? 그들의 엇갈린 견해와 표현은 식당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의 문제로 지금도 여전히 격렬한 갈등을 속에 있다. 세기말 현장은 어떤해법으로 이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확장된 매체는 이제, 현대자동차 공장 울타리 넘어 우리 모두에게 적극적인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